중고차 구매를 알아보던 최아무개(31)씨는 최근 집중호우를 지켜보면서 마음을 바꿨다. 중고차 시장에 침수 이력을 속인 ‘사기 매물’이 등장할까 걱정이 된 탓이다. 최씨는 11일 “주변에서 앞으로 1년간은 중고차를 사지 말라고 하더라”며 “아예 자차 마련을 미루거나 차라리 신차를 살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기록적인 폭우가 계속되면서 중고차 시장도 울상을 짓고 있다. 중고차 시장에 침수 차량 매물이 쏟아질 것이라는 소비자들의 우려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손해보험협회 집계를 보면, 지난달 9일부터 이달 10일까지 한 달여간 국내 12개 손해보험사에 접수된 자동차 침수 피해 신고는 7113건에 이른다.
문제는 보험 처리가 되지 않아 침수 이력을 알 수 없는 차량이다. 자동차보험 자기차량손해 항목 중 단독사고 특약에 가입돼 있지 않은 차량은 침수가 돼도 보상을 받을 수 없다. 업계는 침수 이력을 감춘 사기 매물이 늘어날 경우 소비자는 물론 시장 자체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한다. 서울에서 중고차 업체를 운영하는 신아무개씨는 “침수 차량의 80%는 보험 처리를 받고 폐차된다”면서도 “하지만 보험 처리하지 않은 차량은 작정하고 속이면 (침수 이력을) 알기 어려울 수 있다. 이런 부분을 걱정하는 고객들의 문의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폭우 이후 중고차 거래량은 감소 추세인 것으로 추정된다. 180여개 업체가 가입한 서울자동차매매사업조합은 지난 1∼10일 중고차 판매량이 1435대로 지난달 같은 기간보다 24.9% 줄었다고 밝혔다. 조합 관계자는 “원래 휴가 기간 직전에 판매량이 늘고 8월에는 조금 줄어든다”면서도 “장마가 길어진 데다 침수 차량에 대한 걱정까지 겹치면서 거래량이 더욱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고차 업계도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중고차 거래 플랫폼을 운영하는 엔카닷컴은 최근 침수로 인한 보험 처리 이력을 조회할 수 있는 사이트 ‘카히스토리’를 플랫폼에 연동했다. ‘판매자가 알려주지 않은 사고(침수 포함) 사실이 나중에 밝혀지면 배상한다’는 내용도 특약에 넣도록 안내하고 있다.
신차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일부 완성차 업체들은 침수 차량 피해 고객을 겨냥한 신차 프로모션을 시작했다. 기아자동차는 수해 차량을 폐차한 고객이 기아차 신차를 다시 구매할 경우 5일간 무상으로 렌터카를 제공해주고 있다. 현대자동차와 르노삼성자동차 등도 침수 차량을 위한 서비스를 마련했다. 한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아무래도 차를 바꾸는 고객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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