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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LG와 배터리 전쟁 SK, ‘벼랑끝 전술’로 협상력 떠받치기

등록 2020-09-07 04:59수정 2020-09-07 10:50

영업비밀 빼돌린 혐의 놓고 열릴
국제무역위 최종결정 한달 앞두고
LG서 제시한 합의금 수용 거부하고
끝까지 법적 절차 밟을 뜻 시사

SK, "침해근거 객관적 제시하면
구체적 검증해서 합의 나설 것"
업계 "SK에 유리한 결정 가능성 미미"
그래픽_김승미
그래픽_김승미

영업비밀 침해 여부를 놓고 엘지(LG)화학과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이 벌이는 배터리 전쟁의 승패를 가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 결정 시한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이런 가운데 엘지화학의 배터리 영업비밀을 빼돌린 혐의를 받는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은 최근 벼랑 끝 전술을 펼치는 모양새다. 엘지화학 쪽이 제시한 합의금에 대해 ‘수용 불가’ 입장을 거듭 밝힌 것은 물론, 법적 절차를 끝까지 밟을 가능성도 시사하고 있다. 국제무역위 최종 결정을 앞두고 강경한 태도로 돌변한 것이다. 관련 업계에선 막다른 골목에 선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이 막판 여론전에 지나치게 올인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이 지난해 4월 삭제한 것으로 추정되는 문서 중 일부의 제목. ‘엘지(LG)화학과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셀 제조 공정’ ‘엘지화학 전극 핵심 설비 사양’ ‘엘지화학 분석’ 등의 문구가 눈에 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합의금 액수 큰 ‘견해 차’

6일 양쪽 기업의 설명을 종합하면, 엘지화학과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은 합의금 액수에 좀처럼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엘지화학은 적정 합의금 수준을 ‘3조원 이상’으로 산정한 반면,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이 이제까지 제시한 최고 금액은 ‘수백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증권가가 최근 추산한 합의금 규모는 2조원이다. 에스케이이노베이션 입장에선 조기에 협상을 타결할 의지가 없었던 셈이다.

에스케이이노베이션 쪽은 합의금 제시 자체를 부인한다. 회사 관계자는 “엘지화학이 어떤 기술을 탈취당했고 이로 인해 우리 쪽이 본 이익이 뭔지 구체적으로 밝혀진 게 없다”며 “이에 대한 최종결정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합의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최근 엘지화학 쪽에 합의금을 제시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당분간은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는 쪽으로 국제무역위 최종 결정을 이끌어내는 데 주력하겠다는 뜻이다.

폴크스바겐 수주 경쟁을 앞둔 2018년 8월 에스케이이노베이션 내부에서 오간 이메일 기록. 국제무역위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폴크스바겐 수주 따내…“영업비밀 이용”

이에 대해 관련 업계에선 국제무역위가 에스케이이노베이션 쪽에 유리한 최종 결정을 내릴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한겨레>가 지난 2월 국제무역위가 내놓은 예비결정 판결문을 살펴보니, 행정판사는 “인멸된 증거와 엘지화학이 입은 피해 간 연관성이 없다”는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의 반론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행정판사는 증거가 인멸됐기 때문에 판례에 따라 엘지화학에 입증 책임이 없을 뿐 아니라, 복원된 문서만으로도 연관성이 충분히 입증된다고 봤다.

핵심 근거 중 하나는 폴크스바겐 수주 건이다. 2018년 11월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은 엘지화학을 제치고 폴크스바겐 엠이비(MEB) 배터리 프로젝트 수주를 따냈다. 수주 경쟁을 앞둔 2018년 8월 에스케이이노베이션 내부에서 오간 메일을 보면, “경쟁사 비오엠 견적 관련 긴급 요청” “예전 경쟁사 정보로 방향을 잘못 잡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첨부된)비오엠의 상세 내용을 참고해달라. 지난해 하반기 버전인 것으로 보인다”는 등의 문구가 담겨 있다. 비오엠(BOM)이란 제품을 구성하는데 필요한 원자재와 부품을 전부 목록화한 것이다. 자재별로 공급 업체가 명시돼 있어 원가 구조를 추론해낼 수 있다는 게 엘지화학 쪽 설명이다. 행정판사도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이)빼돌린 비오엠 등 영업비밀로 당사의 원가 구조를 파악해 당사보다 더 낮은 가격을 써낼 수 있었다”는 엘지화학 쪽 주장을 받아들였다.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이 지난해 4월 ‘엘지화학’ ‘엘(L)사’ 등의 단어가 들어간 문서 목록을 정리해 공유하고 삭제 등의 조치를 지시한 것도 문제가 됐다. 해당 목록에는 ‘엘지 셀 퍼포먼스’ ‘엘사 전극 라인 설비’ ‘엘지 리튬이온 배터리 가격’ ‘엘사 가격 책정 분석’ 등 제목의 문서가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행정판사는 “인멸된 증거와 이번 소송 간 연관성에 대해 엘지화학이 충분히 타당하고 구체적인 의견을 제시했다”며 “제재를 요청하는 데 있어 엘지화학 쪽이 더 이상 입증해야 할 것이 없다”고 봤다.

이에 대해 국제무역위는 지난 4월 재검토 결정을 내리면서 “인멸된 증거가 영업비밀 침해나 경제적 손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혹은 있었을 가능성이 있는지” 다시 살펴보겠다고 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다른 소송에도 불똥 튈 듯

만일 사전 합의를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국제무역위 최종 결정마저 판을 뒤집지 못할 경우,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이 입을 피해는 엄청나다. 배터리 부품에 대해 1∼2년 이상의 수입금지조치가 내려지면 2022년부터 폴크스바겐에 공급하기로 한 미국산 배터리 생산이 아예 불가능해진다. 2023년부터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한 포드와의 거래관계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국제무역위는 영업비밀을 침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기술을 개발했다면 소요됐을 기간을 추산해 수입금지조치 기간을 정한다. 2010년 이후 국제무역위가 최종 결정을 내린 영업비밀 침해 소송 6건을 살펴보면, 수입금지조치 기간은 5∼25년이었다. 10년이 3건으로 가장 많았고, 에스케이이노베이션과 마찬가지로 증거인멸 후 조기패소를 한 화학기업 오가닉 킴야(Organik Kimya)는 25년간 수입을 금지당했다. 예상대로 엘지화학의 손을 들어주는 최종 결정이 나온 뒤에는 외려 엘지화학의 협상 카드만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두 회사 사이의 다른 소송에도 불똥이 튈 가능성이 높다. 두 회사는 국제무역위에서 특허 침해 소송 2건을, 델라웨어주법원에서 손해배상 소송 3건을 별도로 진행 중이다. 미국 연방지방법원은 영업비밀 침해 건의 경우 대체로 국제무역위 결정의 구속력을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종 결정 전에 합의하는 게 최선이라는 건 에스케이 쪽도 알고 있을 것”이라며 “한창 배터리 기술 투자가 필요한 시점에 천문학적 규모의 합의금을 내기엔 부담스러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벼랑 끝 전술이 협상력을 높이는 데 외려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 셈이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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