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화폐의 효과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 보고서를 두고 이재명 경기지사가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면서 국책연구기관의 연구 독립성 문제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21일 경제인문사회연구회 등의 취재를 종합하면, 정책 생산 및 평가가 주된 업무인 국책연구기관에 대한 외압은 과거부터 있었다. 참여정부 시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검토 보고서를 긍정적으로 쓰라는 압력을 받던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사표를 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김이태 박사가 4대강 사업에 관한 정부 용역의 부당함을 고발한 양심선언을 했다가 징계를 받은 바 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도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한국금융연구원장 시절 “연구원을 싱크탱크(두뇌)가 아니라 마우스탱크(입) 정도로 생각하는 현 정부에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한갓 사치품일 수밖에 없다”고 밝힌 뒤 사퇴했다. 금융연구원은 은행 등 민간이 출연한 기관인데도 정부의 외압이 있었던 셈이다.
이재명 지사의 이번 발언은 과거와 달리 공개적인 비판이었지만 여전히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정책 훼손하는 국책연구기관에 대해 엄중문책이 있어야 마땅하다”는 이 지사의 발언이 국책연구기관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조세연 출신의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연구가 나왔다고 바로 정부가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아닌데 이 지사의 반응은 지나치다”며 “보고서가 문제라면 다른 연구를 통해 논박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대외경제연구원 출신의 한 국책연구원 본부장도 “일개 연구원의 보고서에 대해 대선 주자가 비판한다는 것이 체급에 맞지 않고, 국책연구기관의 연구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국책연구기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국내에 민간 싱크탱크가 활성화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국책연구기관의 나름의 역할이 필요하다”며 “정부 지원을 받아 제 목소리를 내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지만, 연구기관과 연구자들의 독립성을 배려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국제학부)는 “거시경제나 무역 등에 대해 국책연구기관이 정책을 내놓으면 이를 논박할 다른 기관이 없어 논쟁이 일어나지 않고 정부 주도로 갈 수밖에 없다. 결국 국책연구기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주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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