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산하 불공정수입조사국(OUII)이 엘지(LG)화학과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 간 특허 침해 소송과 관련해 에스케이이노베이션에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27일 국제무역위 누리집을 보면, 불공정수입조사국은 지난 11일(현지시각) “(에스케이이노베이션에)제재를 부과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국제무역위 행정판사에게 제출했다. 지난해 9월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은 엘지화학이 파우치형 배터리 관련 기술이 담긴 자사의 10121994번 특허(‘994 특허’)를 침해했다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엘지화학은 곧이어 특허 침해 맞소송을 내고 “994 특허는 엘지화학의 선행 기술을 참고한 것”이라고 반박해왔다. 지난달에는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이 소송을 제기하고도 관련된 증거를 인멸했으므로 이에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행정판사에게 요청했다.
불공정수입조사국은 엘지화학과 의견을 같이 했다.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이 증거를 인멸한 점이 인정되며, 이 때문에 엘지화학 쪽 주장을 사실로 인정하는 행정판사의 명령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구체적으로는 에스케이이노베이션 직원이 994 특허에 담긴 기술을 고안해내는 과정에서 엘지화학의 배터리셀 A7을 참고했다는 등 엘지화학의 5가지 주장을 모두 사실로 인정해야 한다고 봤다. 디스커버리(증거 개시) 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데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불공정수입조사국은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은)디스커버리 명령이 내려진 이후에도 엘지화학이 언급된 이메일을 삭제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은 보도자료를 내고 “불공정수입조사국은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의 반박 의견서를 보지 못한 채 본인들의 의견서를 제출한 것”이라며 “엘지화학에서 삭제됐다고 억지 주장하는 문서들은 그대로 있다”고 반박했다.
이번 의견서는 엘지화학과 에스케이이노베이션 간 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4월 엘지화학이 낸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시작으로 두 회사는 법적 다툼을 계속하는 한편, 최근에는 합의를 보기 위해 협상을 벌여왔다. 올해 2월 국제무역위 행정판사가 예비결정에서 엘지화학의 손을 들어준 이후로는 엘지화학이 승기를 잡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특허 침해 소송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오면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이 더욱 불리한 국면에 서게 되는 셈이다. 다만 불공정수입조사국은 소송에서 공익을 대변하는 독립적인 기구로, 조사국의 의견은 향후 행정판사나 국제무역위의 결정과 결을 달리할 수 있다.
영업비밀 침해 소송의 최종결정 날짜가 3주가량 미뤄진 점도 변수다. 업계에서는 양쪽 기업이 최종결정 전후로 합의를 볼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최근 국제무역위는 최종결정 기한을 다음달 5일에서 26일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등의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