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기획재정부 제공.
정부가 코로나19로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재정 건전성을 도모하는 재정준칙을 발표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전세계 주요 나라들이 대규모 재정 적자를 감수하면서 확장적 재정정책을 쓰는 상황에서 발표해 향후 국가재정법 개정을 두고 국회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재정환경 변화 대응과 재정의 지속가능성 유지를 위해 재정준칙 도입 방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재정준칙은 국가채무, 재정적자 등 재정 건전성 지표에 목표를 정해 관리하도록 하는 규범이다.
기재부가 마련한 재정준칙은 우선 2025년부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60%, 통합재정수지 -3% 이내로 관리하도록 하고, 한도가 넘어갔을 경우 재정건전화 대책을 의무적으로 마련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재부는 지난 8월 발표한 ‘2020∼2024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올해 국가채무비율은 43.5%(3차 추경 기준), 통합재정수지는 -3.9%(3차 추경 기준)이며 2024년에는 각각 58.3%, -3.9%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결국 재정준칙이 마련되면 2025년부터 시행되지만 그 이전부터 적용을 대비해 재정 지출에 제약이 생길 수 있는 셈이다.
또 경제위기나 경기둔화 대응을 위해 한도 적용을 한시적으로 면제하거나 한도를 일부 완화할 수 있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위기 유형에는 전쟁과 대규모 재해, 글로벌 경제위기 등이 꼽혔고, 이때는 채무비율이 늘어나도 첫해에는 이를 포함하지 않고, 4년에 걸쳐 25%씩 늘려 반영할 계획이다. 경기 둔화 때에는 통합재정수지 기준을 1%포인트 낮춰 -3%에서 -4%로 완화하겠다는 내용이다. 기재부는 구체적 기준은 전문가 협의 등을 거쳐 마련할 계획이다. 홍 부총리는 “경제위기 등 이례적 상황에서 국가채무로 인해 위기 직후 재정의 역할이 위축되지 않도록 고려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국가재정법을 개정해 재정준칙 도입 근거를 마련한 뒤 국가채무비율 한도 등 구체 내용은 시행령에 담고 5년마다 재검토할 계획이다. 또 입법예고와 부처협의, 법제처 심사 등을 거쳐 정부 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향후 국회에서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두고 여야 간 치열한 논쟁이 예상된다. 여당은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확장적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며 기재부의 재정준칙 발표를 만류해왔다. 이번 발표를 앞두고서도 기재부와 공식 당정협의조차 갖지 않았다. 그럼에도 기재부가 재정준칙을 발표해 여당이 정부 안에 반대하는 입장에 설 처지에 놓였다. 반면 야당은 기재부가 발표한 재정준칙이 경제위기나 경기둔화 등 예외 조항을 둬서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홍 부총리는 “전 세계 92개국이 재정준칙을 운용하고 있고, 선진국 가운데 한국과 터키만 재정준칙 도입 경험이 없어 도입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며 “중장기 재정환경 변화 대응은 물론 재정의 지속가능성 유지를 위해 우리나라 여건에 맞는 재정준칙 도입을 추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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