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가 미성년자나 취약계층을 상대로 구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할 때 적절성 여부를 더 엄격히 따진다. 지난 3월 한 보험사가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홀로 남은 초등학생에게 소송을 제기해 논란이 됐는데 이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금융감독원은 미성년자와 경제적 취약계층에 대한 보험사의 소송 남용 방지를 위해 이들 상대로 한 구상금 청구 소송을 할 때 △보험사 소송관리위 심사를 거치게 하고 △준법감시인 합의와 임원 이상 결재를 받도록 하며 △보험사마다 구상금 청구 소송 현황을 공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9일 밝혔다.
보험사가 소비자를 상대로 소송을 할 땐 회사 내부 규정에 따라 보험사 ‘소송관리위원회’ 심의를 받는다. 교수, 변호사, 소비자보호 전문가 등 외부인들이 참여한 소송관리위 심사를 미리 거쳐 소송 남발을 막자는 취지다. 보험사는 또 준법감시인 합의를 거치고 임원 이상의 최종 결재도 받아야 한다. 회사별 소송 제기 건수와 보험금 청구건 대비 소송 제기 비율 등도 보험협회 홈페이지에 공시된다.
하지만 구상금 청구소송에 대해선 이런 의무가 없었다. 구상금이란 제3자의 행동으로 보험 가입자가 피해를 입었을 때 보험사가 먼저 보험금을 가입자에게 지급한 뒤 제3자에게 청구하는 돈이다. 보험사가 구상금 청구소송을 진행할 땐 소송관리위 사전 심의를 거치지 않고 준법감시인 합의도 필수사항이 아니어서 현장 부서장 결재만 받으면 된다. 이 때문에 올해 한 보험사가 아버지를 잃고 고아가 된 초등생에 구상금을 청구해 사회적 논란이 됐다. 당시 보험사는 초등생에게 돌아가야 하는 보험금 일부는 성년이 될 때까지 지급하지 않은 채 2600만원 구상금을 청구했다. 또 다른 보험사는 구상금 청구 소멸시효(10년)가 지난 사고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 가족들에게 4억여원을 갚도록 요구해 논란이 됐다.
금감원은 앞으로 소송관리위 심사 대상에 ‘미성년자 등 취약계층 상대 구상소송’과 ‘소멸시효 경과 채권에 대한 구상소송’을 새로 포함하기로 했다. 소송 대상이 취약계층이거나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 관련이면 사전에 소송관리위 심사를 받게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취약계층은 미성년자 등 소송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나 기초생활수급자 등 업계가 사전에 정한 기준에 해당하는 경제적 취약계층이다.
금감원은 또 이런 소송은 현장 부서장이 아닌 임원 이상 결재를 받도록 하고 준법감시인 협의도 임의가 아닌 필수사항으로 거치도록 할 예정이다. 보험사 내부 규정을 고쳐야 해 개별 보험사와 협의가 필요하다.
이제까지 보험사 공시 대상이 아니었던 소송관리위원회 개최 횟수와 소송심의 건수, 심의 결과도 공시 대상에 포함된다. 금감원은 2021년 상반기 중 보험업 감독 규정과 시행세칙 등 관련 규정을 개정할 계획이다.
신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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