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그룹이 지난 2012년 지주회사 체제로 그룹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대주주들은 모기업인 삼양사 지분을 현물출자해 지주사 삼양홀딩스 주식을 취득했다. 주식 교환과정에서 양도차익이 발생했지만, 지주사 설립·전환시 현물출자해 바꾼 주식에 대해선 ‘처분’시까지 양도소득세 납부를 미뤄주는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규정에 따라 과세이연 혜택을 받았다. 이후 대주주 가운데 김상하 삼양그룹 회장의 외동딸 김영난씨가 2013년 숨지면서 삼양홀딩스 주식이 남편과 자녀에게 상속되자, 국세청은 이를 과세이연 중단 사유인 ‘처분’으로 보고 양도세 11억여원을 부과했다.
이에 상속인들이 지난해 3월 서울행정법원에 ‘양도세 부과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12월 승소했다. 피고인 용산세무서장이 올해 1월 상소했지만, 9월 소를 취하해 원심이 확정됐다. 과세이연된 주식의 ‘처분’이 이뤄졌는데도, 과세를 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와 과세당국이 양도세 부과를 취소하게 된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사태의 발단은 2010년 이뤄진 조특법 개정이다. 이전까지 조특법 조항에 ‘처분’의 구체적 사례로 명시돼 있던 ‘상속’이 빠졌다. 기획재정부는 “조특법에 지주회사 과세이연에 대해 ‘처분할 때까지’라고 명확히 돼 있고, 당연히 상속은 처분에 속한다고 판단해 중복 조항을 삭제했다”고 했다. 실제로 2016년 기재부는 민원인의 세법 해석에 요구에 “처분에 상속도 포함된다”고 밝혔고, 개정 연혁을 보면 ‘처분’과 중첩된다는 이유로 삭제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법원은 법 개정 취지는 살피지 않고, 개정된 조특법과 법인세법 시행령 문구에서 ‘상속’이 삭제된 점에만 주목해 상속인에게 과세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관련 규정의 문언과 체계, 개정 연혁 등에 비춰볼 때, ‘처분’에 ‘상속’이 포함된다고 해석할 수 없다”고 했다.
문제는 개정된 조특법에 대한 법원의 이런 판단이 유지된다면, 향후 삼양그룹과 유사한 소송이 이어져 정부가 1조5천억원이 넘는 양도세를 걷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조원태 회장 등 한진그룹 일가는 고 조양호 회장 사망하면서 물려받은 한진칼 주식에 대한 양도세 약 300억원을 돌려받기 위한 소송을 준비 중이다. 앞서 국세청은 고 조양호 회장이 한진그룹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때 기존 주식과 지주회사인 한진칼 주식을 교환하면서 발생한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이연 혜택이 끝났다고 판단해 상속인에게 양도세를 부과했다.
한진뿐 아니라 지주회사로 전환해 과세이연 혜택을 받은 다른 대기업 총수 일가도 상속 과정에서 대규모 세금 납부를 또다시 유예받을 가능성이 있다. 국세청은 2011∼2017년 167명의 대주주들이 지주회사 전환으로 1조5060억원에 이르는 양도소득세 과세이연 혜택을 받았다고 채이배 전 국회의원에게 2018년 밝혔다. 이후에도 롯데, 쿠쿠홀딩스 등 2021년 과세이연 혜택 종료를 앞두고 많은 그룹들이 속속 지주회사로 전환해 양도세 면제액은 더욱 커진 상황이다. 대주주 일가들이 주식을 물려받으면서 양도세 면제 혜택마저 대를 이어 누릴 수 있는 셈이다.
기재부는 “법원이 조특법 개정 배경을 잘못 이해했다”고 반박할 뿐 적극적인 해명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강정민 경제개혁연대 연구위원은 “서울행정법원 판결이 맞다면, 지배주주에게 양도세 과세이연 혜택을 무한정 허용하는 꼴”이라며 “기재부와 국세청은 정확한 사실 파악을 한 뒤 향후 소송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국세청이 소를 취하한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개혁연대 출신인 채이배 전 국회의원은 “기재부의 세법 해석과 개정 연혁이 있는데도 항소를 포기한 이유를 이해하기 힘들다”며 “대법원까지 가서 명확한 판결을 구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에 용산세무서 관계자는 “서울국세청에서 소송을 담당해 항소 포기 사유를 알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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