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피난처 말레이와 협약 개정협상
정부가 조세 피난처에 본사를 둔 국제 투자자본이 국내에 투자해 얻은 자본이득에 대해 세금을 매길 수 있도록 외국 정부와 조세협약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10일 “국제 투자펀드가 조세 피난처를 이용해 국내에서 거액의 자본이득을 거두고도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는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조세 피난처가 있는 말레이시아에 이중과세 방지협약 개정을 여러차례 요구했으며, 최근 말레이시아 정부와 한차례 실무협상을 벌였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으나 우리나라에서 일부 과세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협약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말레이시아와 우선적으로 이중과세 방지협약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국내에 들어온 국제 투자자본이 대부분 말레이시아의 조세 피난처인 라부안에 본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뉴브리지캐피탈도 라부안에 별도의 ‘서류상 회사’가 있어 제일은행 매각을 통해 얻은 1조1500억원에 이르는 차익에 대해 세금을 물지 않았다. 뉴브리지캐피탈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제일은행을 인수했다가 지난달 매각하면서 1조1500억원에 이르는 자본 이득을 챙겼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정부는 조세협약 개정에 난색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경부 관계자는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중과세 방지협약이 개정될 경우 국제 투자펀드가 라부안을 떠나고 이로 인해 각종 수수료 수입이 줄어들 것을 우려하는 것 같다”며 “다만 말레이시아 쪽도 일단 협상은 계속하겠다는 방침”이라고 전했다.
현행 국제 조세 기준은 국가간 자본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자본 이득에 대한 세금은 법인 소재지 나라에서만 매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최근 예외 조항을 두는 경우들이 생겨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미국계 투자펀드인 리플우드가 공적자금이 투입된 신세이은행 지분을 매각해 막대한 차익을 챙기고도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게 되자, 미국을 설득해 공적자금을 투입한 일본계 금융회사를 외국인 주주가 팔 때 면세 혜택을 취소하는 ‘신세이 조항’을 조세협정에 새로 넣었다. 또 영국 정부는 공익사업체를 인수했다가 매각해 거둔 자본이득이 클 경우 ‘횡재세’를 매기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한두 나라들이 이중과세 방지협약을 개정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국제 투자자본의 과세 회피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공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재경부 관계자는 “투자자본은 한 곳의 조세 피난처를 막으면 다른 조세 피난처로 손쉽게 옮겨갈 수 있다”며 “말레이시아와의 조세협약 개정이 자칫 라부안을 통해 국내에 들어온 국제 투자자본을 다른 나라로 옮겨가게 하는 결과를 빚을 수도 있어 신중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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