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3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유행은 심각한 양극화 현상을 야기했지만, 아직 방향을 바꾸기에는 늦지 않았다. 새로운 경제에는 새로운 규칙이 필요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지난해 가을 국제통화기금(IMF)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의 말처럼 코로나19는 경제 상황을 바꿨다. 케이(K)자 성장은 승자와 패자를 갈랐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 대기업의 종사자들은 급증한 영업이익만큼 상여금도 더 요구하는 반면 폐업 위기에 처한 자영업자들은 밤 10시까지 한시간만이라도 더 영업하도록 허용할 것을 간청 중이다.
위기로 승자와 패자의 벌어진 틈을 메우는 데는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기획재정부 관료들은 59년 만의 네차례 추경 편성과 마스크 공급 등으로 바삐 움직였다. 동시에 전국민 재난지원금에 반대했다.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논의된 자영업자·소상공인 피해 보상도 난색을 표했다. 정의당이 발의한 재난연대세에도 고개를 저었다. 모두 ‘재정건전성’이 이유였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라는 말만 1년 내내 되풀이한 셈이다. 그사이 사회적 거리두기는 길어졌고 피해는 깊어졌다. 재정건전성이 이를 메울 수 없다. 일자리를 잃거나 영업을 할 수 없는 이들을 설득할 수 없다. 대안을 제시하고 고통을 연대해야 한다.
기재부는 반대 외에는 소극적이었다. 경기 회복을 위해 추진 중인 한국판 뉴딜의 세 축 가운데 하나인 디지털뉴딜만이 기재부의 아이디어였다. 그린뉴딜과 사회안전망 강화 등은 다른 부처가 제시했다. 전국민 고용보험 도입도 ‘경제 컨트롤타워’의 몫이 아니었다. 대신 투자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의 ‘100조원 투자 발굴 프로젝트’를 올해 10조원 더 늘렸다. 영국이 1차 세계대전 당시 한시적으로 전쟁으로 이득을 얻은 기업에 부과했던 ‘초과이득세’(excess profits duty, 세율 40~80%) 도입을 검토하는 등 다른 나라들이 획기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모습과는 달랐다.
새로운 규칙이나 대안은 실행될 때뿐만 아니라 제시될 때도 설득력이 크다. 지금을 견디면, 더 나아진다는 기대를 걸 수 있어서다. 재정건전성에는 이런 희망이 담겨 있지 않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자유방임의 종말>에서 “정부에 중요한 것은, 개인들이 이미 하고 있는 일을 조금 더 잘하거나 조금 더 잘 못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전혀 시도되고 있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지금 시민들이 기재부에 바라는 역할이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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