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 정세균 총리, 홍남기 경제부총리 등이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열린 제2차고위당정협의회에서 추경 및 재난지원금 논의에 앞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구윤철 국무조정실장, 홍남기 경제부총리, 정세균 총리, 이낙연 대표, 김태년 원내대표,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박광온 사무총장. 연합뉴스
기획재정부가 예측한 국고채 이자비용 추계와 실제 이자비용 부담이 큰 차이를 보이면서, 재정건전성을 다양한 각도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기재부는 코로나19에 대응하는 확장적 재정에 대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내세우며 재정 확대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하지만 낮은 국고채 금리로 과거보다 더 많은 재정여력이 있다는 주장이 전문가와 관련 기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1일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에스앤피(S&P)의
‘국가채무 조정과 대규모 재정 완화’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2023년 국가순부채 비율(31.9%)이 2020년(36.2%)과 비교해 1%포인트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국가순부채 비율’은 국가채무에서 국민연금 등 보유 자산을 제외한 순부채를 국내총생산으로 나눈 값이다. 보고서는 한국을 포함한 41개국이 2023년까지 순부채 비율이 1%포인트 이상 하락하고, 캐나다와 중국 등 21개국은 0~1%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에스앤피는 저금리 상황의 지속과 2022년 경기 반등을 전제로, 국고채 금리와 명목지디피 성장률 관계를 따져 성장률이 국고채 발행에 따른 이자비용보다 높은 경우 국가순부채 비율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성장률이 이자율보다 높으면 부채가 늘더라도 조세수입이 늘어 이자비용과 원리금 상환을 감당할 수 있다는 논리다. 2023년 한국은 이자율과 성장률 간의 차이(이자율-성장률)가 -2.3%포인트였다.
에스앤피의 주장은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의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서머스 교수는 지난해 11월 같은 학교 제이슨 퍼먼 교수와 함께 쓴 논문(‘저금리 시대의 재정정책 재검토’)에서 미국의 경우 국고채 실질금리(10년물 기준)가 2000년에 4.3%에서 2020년 초반에 -0.1%로 4%포인트 이상 하락했다며, 장기 실질금리가 1.3% 미만이라면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부채비율은 150%까지 문제가 없다고 추정했다. 미국은 지난해 국가채무가 전년보다 25%(4조달러) 늘었지만, 이자비용은 오히려 8% 줄었다. 서머스 교수는 국가채무의 지속가능성을 따지는 잣대로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비율’ 대신 ‘국내총생산 대비 실질 국채이자비용 2% 미만’을 제시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경제학자를 지낸 올리비에 블랑샤르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도 초저금리 시대에 확장적 재정 정책을 지지한다. 그는 지난달
인도 아쇼카대학 초청 강연에서 “정부가 이상적인 국가채무비율을 따지는데 집중하지 말아야 한다”며 “과거에 비생산적이었는데 현재는 더욱 그렇다”고 밝혔다.
캐나다 정부도 지난해 11월 발표한
‘재정 가드레일’에서 고용률, 총 근로 시간, 실업률 등 경제 데이터를 강조하면서 “정부 부채가 최근 몇년 동안 크게 늘어날 것이지만, 역사적인 최고조에 달했던 1990년대 이자비용 부담은 국내총생산의 6%를 넘어섰는데, 2020~21년 지디피의 1% 미만으로 1세기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같은 주장이 나온다. 류덕현 중앙대 교수(경제학)는 지난 1월 국회 사무처에 제출한 ‘코로나19 대응 재정정책의 효과와 재정건전성 관리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경제성장률이 이자율보다 높은 추세가 2000년 이후 지속되고 있다”며 “당분간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측된다는 점에서 채무지속가능성이 있다고 평가된다”고 밝혔다.
이런 주장들에 대한 반대 의견도 있다. 국제통화기금의 지난해 7월 보고서 ‘공공채무와 성장률 대비 이자율’에서는 “국가채무가 큰 상황에서 이자율과 성장률이 뒤집어져 이자율이 더 높아질 경우 위험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이태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도 “2008년 금융위기와 지난해 코로나19 유행 등으로 주요국에서 정책적으로 저금리를 유지한 탓에 일시적으로 성장률이 이자율보다 높아진 것”이라며 “한국은 계속 성장률 둔화가 예상돼 저금리라고 국가채무 위험이 줄어든다고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미국 국고채 금리가 상승세를 보여 반대 의견에 더 힘이 실리는 중이다. 미국 10년물 국고채 금리는 지난 연말 0.92%에서 2월 말 1.49%까지 반등했다.
그럼에도 재정건전성을 평가할 때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비율만을 고려하는 방식에서는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교수(경제학)는 “명목경제성장률보다 국채금리가 낮은 현실에서는 기초재정수지가 크게 적자가 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국가채무비율이 안정화될 수 있어 재정여력이 높아진다”며 “고정된 재정적자 비율이나 국가채무비율만을 강조하는 재정준칙은 문제가 있고 국채이자비용 등의 지표가 재정여력을 더 잘 나타내는 지표라는 주장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또 “한국도 부채비율 증가 속도가 빠르고 고령화에 따른 복지부담이 커져 중장기적으로는 신경을 써야 하지만, 현재 국채금리 비용이나 국가채무비율 수준 등을 고려하면 재정여력이 매우 큰 나라”라고 덧붙였다. 류덕현 교수도 “최근 10년물 국고채 금리가 조금 오르고 있지만 2008년 5∼6%와 여전히 큰 차이를 보인다”며 “국고채 이자비용은 국내총생산 대비 1% 정도로 한국경제가 당분간 충분히 감당 가능한 수준이라고 평가할 수 있고, 국채 증가 속도가 빠르고 재정소요가 많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다른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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