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눌렀던 소비가 폭발하고 있다. 코로나19로 행동에 제약을 받았던 사람들이 서서히 외출하고, 물건을 사고 있다. 지난달 백화점 매출액이 16년 만에 가장 큰 폭 증가했으며 국내 카드 승인액 또한 두 달 연속 상승세다. ‘보복 소비’(pent-up)는 경기를 침체에서 회복으로 끌어 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번 보복 소비의 지속 여부에는 방역 위기 특수성 등 각종 변수가 많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16일 발표한 ‘4월 최근경제동향’의 내수 속보 지표를 보면, 지난달 백화점 매출액은 전년 대비 62.7% 급증했다. 2005년 관련 수치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고치다. 같은 달 국내 카드 승인액의 전년 대비 증가율 또한 20.3%를 나타내며 전달(8.6%)에 이어 두 달 연속 늘었다.
코로나19는 감염병 위기인 탓에 방역 및 이동제한에 따른 소비 충격이 컸다. 실제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는 전년 대비 1% 하락했는데, 국내 실질 민간소비는 4.9%나 줄어 감소폭이 훨씬 컸다. 하지만 올해 들어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와 백신 접종, 코로나19 장기화에 적응한 사람들로 인해 소비가 재개되고 있다. 늘어난 소비는 투자와 생산 증가로 이어져 경제에 활력을 줄 수 있다.
다만 보복 소비의 지속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한국은행은 26일 ‘향후 펜트 업(pent-up) 소비 가능성 점검’ 이슈노트를 통해 과거와 달리 이번 보복 소비는 자동차, 가구 등 내구재 구입이 많다는 특징이 있다고 분석했다. 여행, 대면활동 대신 감염 우려가 비교적 적은 곳에 소비를 늘렸다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내구재 소비가 급감했다가 경기 회복을 기점으로 증가한 것과 반대되는 현상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지난 1월 이를 ‘이례적 수요 구성’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런데 내구재는 고가에 장기간 사용된다. 미래 소비를 앞당기는 측면도 있다. 보복 소비가 내구재를 중심으로 이어지면 증가 폭이 어느 순간 둔화할 수 있다.
지난해 한계소비성향이 낮은 고소득층의 저축이 증가했다는 점도 변수다. 한은은 “높아진 저축률이 일부 고착화되면서 펜트 업 소비의 재개를 제약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8~9월 영국 가계를 조사한 결과 코로나19 위기 이전에 비해 저축을 늘린 가구의 비중은 고소득층이 42%, 저소득층은 22%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코로나19 확산과 백신 보급 상황은 기본적으로 존재하는 잠재 위험이다.
후행 지표의 부진도 중요하다. 지난해 4월 하이투자증권 보고서의 분석에 따르면 2001년 미국 9·11 테러 때 보복 소비가 강력하게 나타났다. 테러 발생에 대응하기 위한 금리 인하로 미국의 소비자신뢰지수가 6개월간 상승했으며, 산업생산이 3개월 만에 정상화되고 원자재 가격도 올라갔다.
하지만 보고서는 “보복 소비가 강력했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실업, 도산, 연체와 같은 후행 지표의 악화로 인해 주가가 4개월 만에 재하락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후행 지표의 악재 역시 염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후행 지표 역시 회복 흐름이 더디다. 지난달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31만4천명 늘면서 13개월 만에 증가 전환했지만, 전년 고용 부진에 따른 기저효과와 정부의 일자리 사업 등의 영향이 컸다.
한은은 이날 지난해 정부 방역 조치 및 개인 감염 우려에 따른 행동 제약이 영향을 미친 민간소비 감소분을 약 4%포인트 내외로 추정했다. 이는 지난 2019년 명목 민간소비 증감률(2.2%)과 지난해 명목 민간소비 증감률(-4.0%)의 차이인 6.2%포인트 중 약 65% 비중이다. 이 외에는 고유의 경제 위기에 따른 소비 감소분이었다. 이 얘기는 올해 보복 소비로 소비 제약이 풀리면 약 4%포인트 내외로 민간소비가 반등할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전슬기 기자
sg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