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예방책으로 안면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필라델피아 거리를 걷고 있다. 연합뉴스
‘사람들이 일하지 않는 경제’. <월스트리트 저널>이 지난달 미국의 고용 시장 상황을 다룬 기사에서 언급한 표현이다. 기사는 “일부 근로자는 여전히 직장으로 돌아갈 경우 코로나19 감염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일부 부모는 자녀의 학교가 문을 닫아 전일제로 일할 수 없다. 급격한 노동력 부족에 대한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소파에 머무르는 것이 유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최근 미국에서는 실업률이 여전히 높은 가운데, 기업들의 구인난이 나타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일할 능력은 있으나 구직 활동을 하지 않는 ‘유휴노동력’(slack) 증가가 이런 현상의 배경인데,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경제의 주요 변수로 꼽히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시행 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완전고용을 달성하기 위해선 유휴노동력 감소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오는 7일(현지시각) 4월 고용 지표를 발표한다. 시장에서는 신규 고용이 100만명 안팎 늘고, 실업률은 전달(6%)보다 하락하는 회복세를 기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연준이 주목할 지표는 경제활동참가율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업자는 그나마 구직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아예 일을 구할 의지가 없는 사람들은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돼 실업률에 잡히지 않는다. 이에 미국의 공식 실업률(U3)은 지난 3월 6%였지만, 구직 포기 및 정규직을 원하는 시간제 근로자를 포함한 광의의 실업률(U6)은 10%대일 것으로 추정된다. 생산가능인구 중 실제 경제활동을 하는 인구(취업자+실업자) 비중인 미국의 경제활동참가율은 올해 3월 61.5%으로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지난해 2월(63.3%)에 못 미치고 있다.
유휴노동력 증가에는 여러 원인이 얽혀 있다. 감염 두려움, 가족에 대한 보육과 간호로 인한 전일제 근무 어려움, 감염에 취약한 중고령층 장기휴직 및 은퇴, 늘어난 일자리에 맞는 노동력이 부족한 노동 수요-공급 부조화 등이다. 실업수당 등 정부가 확대한 지원금도 노동 의지를 약하게 만들고 있다. 일자리를 구하는 대신 지원금을 받으면서 코로나19 상황을 더 지켜보자는 비경제활동인구가 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기업 쪽에선 구인난이 생기고 있다. 정부의 대규모 보조금으로 가계 소비가 강하게 반등하자 기업의 구인 수요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구직 의지는 천천히 회복되는 불균형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난달 23일 “미국 독립기업연맹이 500개 이상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이들 기업 가운데 42%가 지난주에 채울 수 없는 일자리를 갖고 있다고 보고했다”고 전했다.
다만 지원금에 기댄 구직 단념자들이 서서히 감소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미국 노동부는 지난달 29일 전주(4월 18~24일) 주간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55만3천건으로 지난해 3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또 연방 실업수당은 오는 9월부터 혜택이 축소 될 예정이다. 만약 신규 고용이 꾸준히 증가하고, 유휴노동력이 감소하면 연준의 테이퍼링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
미국 뉴욕에서 지난해 코로나19 방역 조처 강화로 어려움에 처한 식당과 주점 종사자들이 ‘식당을 구해달라’는 손팻말 등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뉴욕/AP연합
미국의 유휴노동력 문제는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의 비경제활동인구 규모도 크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비경제활동인구 중 학업과 육아가 아닌 ‘쉬었음 인구’는 지난 3월 기준 243만6천명으로, 2017년 5월부터 매달 증가했다. 그런데 미국보다 상황이 심각하다. 우리나라는 실업수당이 많아서가 아니라 대부분 비자발적 구직 단념이다. 취업을 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는 것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신규 채용 감소, 폐업 등으로 구직 기회 자체가 사라져 ‘쉬었음 인구’가 늘고 있다”며 “우리나라 비경제활동인구 증가는 주로 고용 시장 부진 때문”이라고 밝혔다.
전슬기 기자
sg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