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물가가 들썩이면서 각국의 중앙은행을 압박하고 있다. 물가가 오르면 중앙은행이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기 힘들다. 시장은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면서 긴축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앙은행들은 “물가가 반짝 오르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 올라야 통화정책을 수정할 것”이라며 시장을 달래고 있는데, 경제 주체들은 좀처럼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4일 통계청이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2.3%로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치(2.0%)를 넘었다. 물가 상승률이 2.0%를 넘은 것은 2018년 11월(2.0%) 이후 2년 5개월 만이다.
중앙은행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물가 안정이다. 경기 과열로 물가가 급등하면 기준금리를 올려 통화량을 조절해야 한다. 코로나19로 저금리, 자산매입 등 완화적 통화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각국 중앙은행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시장은 곧 중앙은행들이 물가 상승 압박을 버티지 못하고 부양책 축소에 나설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줄이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하면 각종 경기 활성화 대책으로 겨우 반등에 성공한 경제가 다시 위축될 수 있다. 특히 기준금리를 올릴 경우 돈의 힘으로 크게 오른 부동산·주식 등 자산 가격의 거품이 꺼질 수 있고, 빚을 잔뜩 늘려 놓은 가계와 기업의 이자 부담도 급격히 커지게 된다.
소비자물가지수. 통계청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에 한은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물가 상승세가 일시적”이라고 강조하며 시장의 공포 심리를 누그러뜨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당장 물가가 큰 폭으로 올라도, 이런 추세가 장기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통화정책 변화는 없다는 것이다. 한은은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2.3% 상승한 데는 기저 효과와 석유류 및 농축수산물 가격의 큰 변동성 등 일시적인 요인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식료품 및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1.1%로 아직 높지 않다”며 “현재 물가 상승은 대체로 공급 측면에서 비롯된 것이고, 수요 측면의 상승 압력은 크지 않아 물가 상승률이 2% 넘는 수준을 지속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지난달 “그동안 억눌렸던 수요가 분출될 경우 일시적으로 물가가 높아질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준 또한 인플레이션과 긴축 우려에 대해선 선을 긋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각) “우리는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더 높고 지속적이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연준은 지난해 경기가 회복돼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인 2.0%를 넘어도 당분간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는 평균물가목표제 도입도 선언했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단호한 대응에도 시장이 의심을 거두지 않는 것은 지속적인 물가 상승을 불러올 수 있는 요인들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보복소비 급증, 반도체 및 원자재 부족에서 비롯한 공산품 가격 인상, 경기 회복을 위한 정부의 대규모 재정 지출 등은 최근 실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고, 언제든 인플레이션 기폭제가 될 수 있다.
다만 시장과 중앙은행의 인식에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관련 요인들이 어떻게 진행될지 불확실해서다. 코로나19는 과거 경제위기와는 다른 감염병에 따른 경기침체여서 미래 상황을 예측하기 쉽지 않다.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위험한 것은 알지만 불확실성 앞에서 섣불리 부양책을 거둘 수 없다. 중앙은행들은 1930년대 대공황 때 이른 긴축 정책으로 경기침체 장기화를 겪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도 중앙은행이 긴축 시기를 무한정 미룰 수는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알리안츠의 수석 경제자문 모하메드 엘에리언은 지난 3일 미국 경제 방송 시엔비시(CNBC)에 나와 “현재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고 주장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며 “나는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일 것을 우려한다”라고 밝혔다.
전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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