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경제 경제일반

부동산 ‘신계급사회’… 사다리 끊어버린 164배 격차

등록 2021-05-27 04:59수정 2021-06-03 09:49

[한겨레33살 프로젝트] 자산불평등, 조세정의가 답이다 ①
현 정부 ‘불평등 완화’ 약속했지만
상위 10% 자산 비중 3년간 증가세

집값 폭등·코로나로 자산 격차 심화
“누진과세 강화해 부의 재분배를”

“경제적 불평등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공정하게 경쟁하는 공정경제를 기반으로 혁신성장과 소득주도성장을 통해 성장을 지속시키면서 ‘함께 잘사는 경제’를 만드는 것입니다. 미래의 희망을 만들면서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입니다.”(2019년 신년사)

“지난해 기초연금 인상, 근로장려금 확대 등 포용정책의 성과로 지니계수, 5분위 배율, 상대적 빈곤율 등 3대 분배지표가 모두 개선되었습니다. 특히 저소득 1분위 계층의 소득이 증가세로 전환되었습니다.”(2020년 신년사)

“2021년, 우리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회복’과 ‘도약’입니다. 거기에 ‘포용’을 더하고 싶습니다. 일상을 되찾고, 경제를 회복하며, 격차를 줄이는 한 해가 될 것입니다.”(2021년 신년사)

문재인 대통령은 해마다 신년사에서 불평등을 완화해 함께 잘사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실은 약속을 배신했다. 무엇보다 이번 정부 들어 부동산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며 계층 간 자산 격차는 더욱 확대됐다. 전세계를 휩쓴 코로나19는 여성과 청년, 고령층 등 취약계층을 더 할퀴고 있다.

26일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보면, 우리나라 자산 상위 10%의 점유율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총자산 기준으로 상위 10%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번 정부 취임 첫해인 2017년 41.10%에서 2018년 41.49%, 2019년 42.36%, 2020년 42.54% 등으로 3년간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총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을 기준으로 삼으면 상위 10% 비중의 증가폭은 좀 더 크다. 상위 10%는 2017년 전체 순자산에서 40.57%를 차지했지만, 2018년 41.15%, 2019년 42.25%, 2020년 42.49%로 3년간 비중을 1.92%포인트 늘렸다.

상하위 20% 부동산 격차 164.3배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상위 10%의 금융자산 비중은 2017년 32.90%에서 2020년 32.21%로 외려 0.69%포인트 감소했다는 사실이다. 달리 말하면 부동산 등 실물자산의 상위층 집중도가 뚜렷했음을 시사한다. 이 기간 부동산 가격 상승이 자산 불평등 확대의 주된 요인이었다는 얘기다.

민간 기관의 조사 결과가 보여주는 현실도 마찬가지다. 신한은행이 최근 발표한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 2021’을 보면, 전국 성인 1만명을 조사한 결과 상위 20%는 2018년 평균 보유 자산이 10억9568만원에서 2020년 12억374만원으로 1억806만원(9.9%) 늘어난 반면, 같은 기간 하위 20%는 2838만원에서 2715만원으로 평균 보유 자산이 123만원(4.3%) 줄었다. 이 때문에 상하위 20% 사이 자산 격차도 38.6배에서 44.3배로 커졌다. 자산 격차 확대의 주범은 역시나 부동산이다. 상위 20%는 부동산 자산이 2018년 8억8138만원에서 2020년 9억8584만원으로 1억446만원(11.9%) 늘어난 데 반해, 하위 20%는 703만원에서 600만원으로 103만원(14.7%) 감소했다. 125.4배이던 격차는 164.3배로 더욱 확대됐다.

실제로 최근 몇년 새 주택가격 오름세는 뚜렷했다.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살펴보면, 2017년 4월 대비 올 4월 주택 매매가격(중위가격 기준)은 40.1%, 아파트값은 44.2%나 올랐다. 세종의 경우 오름폭이 각각 138.1%, 129.5%로 세배 가까이 됐고, 서울과 경기 역시 각각 54.7%, 67.1%와 42.7%, 50.7% 등 상승률이 전국 평균을 웃돌았다.

불평등 연구로 유명한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고안한 ‘피케티 지수’ 역시 최근 몇년 새 부쩍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실에 따르면, 피케티 지수는 2017년 7.9에서 2018년 8.1로 높아진 뒤 2019년에는 8.6으로 오름폭이 더 커졌다. 지난해 기준으로 독일(4.4), 미국(4.8)은 물론이고 프랑스(5.9), 영국(6.0), 일본(6.1), 스페인(6.6) 등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피케티 지수는 수치가 높을수록 한 사회에서 평균적인 소득을 올리는 이들이 부를 쌓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불평등이 심각하다는 것을 뜻한다.

‘자녀 세대 지위 향상’ 응답 22% 그쳐

사정이 이렇다 보니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자산 불리기에 뛰어들거나 아예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지로 냉혹하게 내몰리는 실정이다. 서울의 금융공기관에 다니는 김아무개(32)씨는 뛰어든 경우다. 그는 “정부의 말을 믿었는데, 2018년 결혼을 앞두고 봐둔 집이 6개월 만에 3억원이 올랐다”며 “그 뒤론 하루에 수시간씩 매일 부동산 공부를 해 집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돈 벌고 싶은 걸 떠나서 그 정신적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반면 집을 못 사거나 팔아버린 사람은 깊은 자괴감에 빠졌다. 직장인 황아무개(33)씨는 “결혼해 집을 산 친구들은 최근 2~3년 새 5억~6억원을 벌었다더라”며 “그 모습을 보면 정말 일할 맛이 안 난다”고 말했다. 회사원 장아무개(46)씨도 “회사 명예퇴직한 뒤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사이 대출을 갚을 수가 없어 2019년에 집을 팔았다”며 “이득을 보기는 했지만, 지금 그 집은 6억원이 더 올라 이제 앞으로 그런 집을 살 희망은 접었다”고 말했다.

부동산 자산이 도저히 넘어서기 힘든 장벽을 쌓아가면서 장벽 밖의 사람들은 아예 미래에 대한 꿈을 잃어버린다. 수도권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윤아무개(41)씨는 “3년 전 식당이 망해 신용불량자가 됐다”며 “재작년부터 일을 시작해 빚을 갚아가면서 신용 회복은 조만간 할 것 같지만, 다시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윤씨는 이어 “더욱 속상한 것은 초등학생 아이들마저도 나와 같은 신세가 될 것 같다는 사실”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서울연구원이 최근 펴낸 ‘장벽사회, 청년 불평등의 특징과 과제’ 보고서에서도 자산 불평등 인식은 뚜렷하다. 20~39살 청년 1천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심각한 영역으로 ‘자산 불평등’(36.8%)이 가장 많이 꼽혔고, 소득 불평등(33.8%), 주거 불평등(16.0%), 고용 불평등(5.6%) 등이 뒤를 이었다. 또 응답자의 87.2%가 지난 10년간 한국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더욱 심각해졌고, 86.9%는 향후 10년 동안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본인은 물론 자녀 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에 부정적인 인식으로도 이어졌다. 본인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대해 ‘비교적 높다’거나 ‘높다’고 답한 응답자는 24.8%에 그쳤고, 자녀 세대의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에 대해서도 22.6%만 긍정적으로 답했다.

‘끈적끈적한 천장과 바닥’

주식시장을 비롯한 투기성 강한 암호화폐(가상자산) 시장의 과열 양상의 배경에도 자산 불평등의 상처가 아로새겨져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투자자 수는 913만6천명으로 전년보다 299만7천명(48.8%)이나 늘었다. 1년 새 300만명이 주식투자 대열에 뛰어든 것이다. 전체 개인투자자 중 3분의 1이 새로 주식투자에 나선 셈이다. 특히 30대 이하 개인투자자는 316만명(20대 107만1천명, 30대 181만2천명)으로 20·30대 개인투자자는 전년보다 각각 68만9천명, 74만명 늘었다. 30대 이하 개인투자자 가운데 지난해 주식투자를 시작한 비중은 50.8%(161만명)나 됐다. 30대 인구가 2019년 707만명에서 2020년 687만명으로 줄어든 것과 크게 대비된다.

자산 불평등 확대는 사회이동성을 줄여 우리 사회의 역동성을 떨어뜨리기 마련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한국은 소득 하위 10% 가구가 평균 소득 가구로 이동하는 데 다섯 세대가 걸렸다. 24개국 평균인 4.5세대보다 길다. 노르웨이(2세대), 일본(4세대)보다 오래 걸렸고, 미국이나 영국과 같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가 사회이동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꼽는 ‘끈적끈적한 바닥’(sticky floors)과 ‘끈적끈적한 천장’(sticky ceilings)이 상당함을 뜻한다. 국제통화기금(IMF)도 2014년 ‘재분배, 불평등 그리고 성장’이라는 보고서에 “불평등의 감소는 더 빠르고 더 지속력 있는 성장에 보탬이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불평등 가운데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의 영향으로 자산 불평등이 소득 불평등보다 더욱 심각해진 상황”이라며 “정부가 조세 및 재정정책의 누진성을 강화해 부의 재분배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 교수는 이어 “부동산 등 비생산적 소득에 대한 과세 등을 통해 생산적인 부문으로 자원이 배분되도록 하고, 복지제도의 확충과 사회안전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정훈 이지혜 기자 ljh9242@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경제 많이 보는 기사

음식점 폐업률 전국 1위는 이 도시…집값도 급락 직격탄 1.

음식점 폐업률 전국 1위는 이 도시…집값도 급락 직격탄

“그리 애썼던 식당 문 닫는 데 단 몇 분…” 폐업률 19년 만에 최고 2.

“그리 애썼던 식당 문 닫는 데 단 몇 분…” 폐업률 19년 만에 최고

90살까지 실손보험 가입 가능해진다…110살까지 보장 3.

90살까지 실손보험 가입 가능해진다…110살까지 보장

오세훈발 ‘토허제 해제’ 기대감…서울 아파트 또 오르나요? [집문집답] 4.

오세훈발 ‘토허제 해제’ 기대감…서울 아파트 또 오르나요? [집문집답]

한화 김동선, ‘급식업 2위’ 아워홈 인수한다 5.

한화 김동선, ‘급식업 2위’ 아워홈 인수한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