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루블화에 대한 미국 달러와 유로화 환율이 표시된 화면이 있는 환전소 앞을 걸어가고 있다. EPA 연합뉴스
개인 투자자들이 지난 2주간 국내외 러시아 상장지수펀드(ETF)를 746억원어치 순매수한 것으로 집계됐다. 러시아 증시 거래가 중단된 상황에서 이런 펀드를 사는 것은 냉동실에 들어간 생선을 ‘해동’시켜 맛보는 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6일 한국거래소 자료를 보면, 개인은 최근 2주 동안(2월21일~3월4일) 국내 상장된 러시아 상장지수펀드 ‘킨덱스(KINDEX)러시아MSCI(합성)’를 280억원어치 순매수했다. 같은 기간 이티에프 가격은 66.57% 폭락했다. 거래소는 이 이티에프를 7일부터 거래 정지한다. 운용사는 이 펀드가 상장폐지될 수도 있다고 공지했다.
국내 투자자들은 미국 거래소에서도 러시아 이티에프를 대거 사들였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같은 기간 ‘반에크 러시아 ETF’(RSX) 등 3개 종목을 3837만달러(466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이들 펀드 가격도 최근 10거래일 동안 80% 안팎 폭락했다. 운용사들은 펀드 신규 설정을 중단하거나 상장폐지를 추진 중이다.
이티에프 가격은 시장 조성자들이 매매 호가에 관여해 순자산가치(NAV)와 거의 비슷하게 움직이도록 관리한다. 하지만 최근 이 펀드들은 순자산가치보다 50% 낮거나 150% 높게 거래되는 등 들쭉날쭉했다. 국내 러시아 이티에프 가격도 순자산가치보다 30% 높게 치솟기도 했다. 지난달 28일부터 러시아 증시가 문을 닫은데다 펀드 신규설정 중단과 환매 등으로 수급이 꼬인 탓이다.
일반 러시아 펀드도 큰 손실을 입고 있다.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 자료를 보면, 러시아 주식형펀드의 최근 한달 수익률은 -54.65%로 반토막이 났다. 러시아 주식을 담은 신흥유럽 펀드(-51.29%)도 타격이 컸다. 운용사들은 관련 펀드들의 환매를 연기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러시아 펀드는 대부분 영국 증시에서 거래되고 있는 러시아 기업의 주식예탁증서(GDR)에 투자했다. <블룸버그>는 런던에 상장된 가스프롬 등 러시아 기업 예탁증서 지수가 2주 만에 98% 폭락했다고 지난 2일 보도한 바 있다.
미 금융매체 <스트리트닷컴>은 지난 1일 이러한 이티에프들에 의해 ‘유사 러시아 증시’가 만들어졌다며 이를 ‘해동 주식’에 빗댔다. 러시아 증시가 폐쇄돼 펀드의 기초자산인 주식이 거래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이티에프가 주가를 추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엠에스시아이(MSCI) 신흥국지수에서 러시아가 제외됨에 따라 자금이탈이 가속화할 수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에서 거래되는 러시아 관련 모든 상품들이 점진적으로 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기 때문에, 러시아 기업 예탁증서도 상장폐지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난 2일 보도했다.
한광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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