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가 러시아 가스 수송용 가스관 한 곳의 운영을 중단하면서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가스 공급이 25% 줄었다. 가스 공급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수드자 가스관’. 수드자/AP 연합뉴스
“코스피 2000선이 깨질지는 올 겨울 한파에 달렸다.”
최근 증권가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오는 얘기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천연가스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럽을 염두에 둔 것이다. 유럽에서 겨울 한파가 심할수록 난방 수요는 더욱 늘어나고, 이미 크게 오른 가스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 최악의 경우 가스 공급이 제대로 안 돼 공장이 멈춰설 수도 있다. 유럽발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계속되는 이유다.
문제는 여러 불확실성이 산재해 있다는 점이다. 겨울 기온뿐 아니라 러시아의 행보와 유럽의 에너지 다변화 등 변수 투성이다. 만일 러시아가 가스관을 완전히 걸어잠그면 유럽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 과정에서 물가는 얼마나 오르고 경기는 얼마나 더 나빠질까.
국제통화기금(IMF)이 이달 낸 세 편의 연구보고서를 통해 경우의 수를 따져봤다.
■ 유럽, 러시아산 가스 얼마나 대체할 수 있나
유럽은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상당 부분 의존한다. 24일 국제통화기금 보고서
‘유럽의 천연가스-공급 차질에 따른 잠재적 영향’을 보면, 유럽연합(EU)이 지난해 소비한 가스의 약 40%인 1550억㎥가 러시아산이다. 러시아의 가스 공급이 줄어든 데 대한 우려가 높은 이유다.
최근 가스관을 통해 유럽에 들어오는 러시아산 수입량은 1년 전에 비해 60%나 줄어들었다. 간헐적인 공급 중단은 고려하지 않은 계산이다. 이달 러시아 국영기업 가스프롬은 유지·보수를 이유로 열흘간 노르드스트림1을 걸어잠근 바 있다. 향후 또 공급을 중단하거나 수출량을 더 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산 가스를 얼마나 대체할 수 있는지가 관건인 셈이다. 국제통화기금 보고서는 올해 유럽이 800억㎥만 다른 공급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러시아산 수입량의 52%에 그친다. 지난 3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도 비슷한 수준인 57%를 대체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가스 수송 인프라에 있다. 천연가스를 수송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기체 형태 그대로 가스관(파이프라인)을 통해 옮기는 방식과, 액화천연가스(LNG)를 선박으로 수송한 뒤 현지에서 다시 기화하는 방식이다. 전자의 방식은 생산기지와 직접 연결된 가스관을, 후자는 정박 시설과 기화 설비 등이 있는 엘엔지 터미널을 필요로 한다. 적절한 인프라가 없으면 가스를 수입·수출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유럽 경제를 이끄는 독일은 이런 인프라가 부족한 국가 중 하나다. 국제통화기금 보고서
‘러시아산 가스의 공급 중단이 독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독일은 러시아 말고 다른 가스전으로 연결된 가스관이 없을 뿐더러 엘엔지 기화 시설도 없다”며 “러시아산 가스를 대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짚었다.
변수는 앞으로 얼마나 빨리 인프라를 확보하는지다. 독일은 해상 부유식 엘엔지 터미널 건설에 착수했다. 노르웨이 가스전에서 폴란드로 이어지는 가스관도 지어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 보고서는 이런 인프라가 올해 안에 일부 가동된다는 것을 전제 삼아 전망치를 산출한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대체 가능한 공급량은 더욱 떨어진다. 이들 계획이 발표되기 전인 지난 3월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러시아산 가스의 35%만 대체 가능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원자력이나 재생에너지의 발전량을 얼마나 끌어올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전망이 엇갈린다. 국제에너지기구는 풍력과 태양광 발전 시설을 더 설치하면 이를 통해 러시아산 가스 60억㎥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반면 국제통화기금 연구진은 제조 병목 현상으로 인해 이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수요 쪽에서 조정될 여지는 없을까. 일단 최근까지의 가스 가격 상승으로 인한 가계 수요량 감소분은 올해 40억㎥에 그칠 것으로 연구진은 봤다. 가스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 낮아 크게 줄지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산업 부문에서는 130억㎥이다. 연구진은 앞서 계산한 공급 대체량에 이런 수요량 감소분까지 고려하면 러시아산 가스의 63% 정도는 올해 해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경우 국가별 가스 비축량에 따라 심각한 위기를 맞지 않고 이번 겨울을 날 여지도 있다.
문제는 겨울 한파가 심한 시나리오다. 연구진은 이 경우 유럽에서 추가로 감축돼야 하는 소비량이 최대 300억㎥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는 시장에서 그만큼 가스 가격이 올라서 수요량이 줄거나, 정부가 배급제를 통해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다. 가스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 낮은 만큼 전자의 방식을 택할 경우 가격은 크게 뛸 것으로 보인다.
독일을 집중 분석한 연구진도 추위를 주된 변수 중 하나로 지목했다. 이들은 “(러시아산 가스 수입량이 최근의 추세를 유지하면) 가스 부족 사태는 가까스로 피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겨울 추위 등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크다고 짚었다. 앞선 계산은 향후 연간 가스 소비량이 지난 5년간 평균치와 일치할 경우를 전제로 삼은 것이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2026∼2027년까지 매년 겨울 가스 재고량은 위험한 수준까지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며 “예상했던 것보다 겨울 기온이 더 떨어지면 부족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최근 5년 사이에 가장 추웠던 지난해 독일의 연간 소비량은 지난 5년간 평균치보다 3%가량 더 많았다.
결국 가스발 경기 침체를 피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일단 가스가 떨어지면 기업들이 연쇄적으로 생산을 줄이게 될 위험이 있다. 가스 부족으로 철강 제품의 생산이 줄고, 이로 인해 다시 자동차 생산이 감소하는 식이다. 불확실성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작지 않다. 가스 부족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기업은 고용을 감축하고 가계는 소비를 줄일 수 있다.
연구진은 지난달부터 러시아산 수입이 중단됐다는 가정하에 독일의 올해 국내총생산(GDP)이 최근의 수입량이 유지될 때보다 1.5% 줄고, 내년에는 2.7%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물가상승률은 올해와 내년 평균적으로 2%포인트 더 오를 것이라고 봤다.
유럽 밖에서도 작지 않은 타격이 예상된다. 유럽이 액화천연가스 수입을 늘리면서 전세계 수급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 보고서
‘시장 규모와 공급 차질: 유럽연합에 대한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에 따른 고통’은 “단기적으로 글로벌 가스 생산의 탄력성은 꽤 낮다”고 했다. 생산을 빨리 늘릴 수 있는 건 미국 셰일가스 정도인데, 인프라의 한계로 미국에서 유럽·아시아로 수출될 수 있는 양은 한정돼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산 가스를 유럽이 아닌 다른 지역에 공급하기도 어렵다. 러시아의 서부·북부 가스전은 유럽행 가스관하고만 연결돼 있다. 러시아가 유럽을 상대로 가스 공급을 아예 중단하면, 이쪽 가스전에서는 생산을 상당 부분 멈출 가능성이 큰 셈이다.
특히 주요 액화천연가스 수입국에 대한 우려가 높다. 유럽이 수입을 늘리면서 가스 가격이 올라가는 탓이다. 국제통화기금 연구진은 한국과 일본, 파키스탄 등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이 중에서 한국의 국내총생산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봤다. 연구진은 “국가 경제에서 가스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 등에 따라 차이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