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싸게 줬다 3~6개월 뒤 조금씩 올리는 경우 많아
은행들 출혈경쟁 계속하면 고객 부담 커질 우려 있어
은행들 출혈경쟁 계속하면 고객 부담 커질 우려 있어
“대출 싸게 받았다고 좋아할 게 아닙니다. 나중에 금리 오를 게 뻔한데….”(한 시중은행 부행장)
“요즘 주택담보대출은 (처음에 싸게 줬다 나중에 비싸게 받는) ‘미끼금리’ 수준입니다.”(금감원 관계자)
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출혈경쟁이 계속되면서, 나중엔 그 부담을 고객들이 떠안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리가 오르면, 그 충격은 초기에 ‘이자를 감당할 수 있겠다’ 싶어 대출을 받은 고객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기 때문이다. ‘은행의 경쟁이 곧 고객의 이익’이라고 단순하게 볼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은행이 조정 가능한 변동금리지만, 이미 예측가능한 수준을 넘어섰다.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기준이 되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가 지난주말 4.36%로, 29개월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랐지만,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거꾸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지난주 발표한 ‘3월 중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동향’도 마찬가지다. 3월 주택담보대출 평균금리는 지난해 9월 5.36% 이후 최저치인 5.46%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양도성예금증서 금리가 3.51%에서 4.27%까지 0.76%포인트 오르는 동안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0.1%포인트 오르는 데 그친 것이다.
은행권에서는 “두 금리의 차이만큼 은행들이 이익을 포기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이런 현상이 계속될 것 같지는 않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당분간 경쟁은행의 눈치를 보겠지만, 은행들이 ‘출혈’을 감당할 수 있는 기간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은행감독을 맡고 있는 금감원 관계자는 “처음엔 고객 확보를 위해 가산금리를 내렸다가 3~6개월 뒤 금리를 조금씩 올리는 경우가 많다”면서 “항의하는 고객에게만 다시 0.5~1%씩 깎아주는 관행이 반복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한국은행도 위험관리 능력이 취약한 개인들이 너무 많은 위험을 떠안고 있다는 경고를 내놓았다. 한국은행이 2일 발표한 ‘금융안정 보고서’를 보면, 올해 1월말 기준 가계대출의 86.7%가 변동금리 대출 상품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은 “소비자들은 변동금리 상품보다 1.0~1.7%포인트 정도 금리가 낮은 고정금리 상품을 선호하고, 은행 역시 금리 위험을 소비자들에게 전가할 수 있어 고정금리 대출이 전체의 2.2%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며 “하지만 시장금리가 급등해 소비자의 이자 부담이 늘면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은행장들도 이런 위험을 의식한 듯 ‘출혈경쟁 자제’를 외치고 있지만,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
신상훈 신한은행장은 이날 월례조회에서 “예대마진의 총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출혈경쟁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지만, 시장 질서는 바로 서야 한다”며 출혈경쟁 자제의 뜻을 내비쳤다. 강권석 기업은행장도 이날 “일시적이거나 단기적 성과를 위한 비정상적인 영업은 머지않아 시장의 신뢰를 잃게 될 것”이라고 심각한 우려의 뜻을 드러냈다. 황영기 우리은행장은 지난 3월 직원들에게 “연체율 등이 문제가 되면 즉시 ‘전투중지’ 명령을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지만, 아직까지 ‘전투중지’ 명령은 없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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