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장애인 가입 꺼리는 관행 여전 인권위 개선 권고에도 관련부처 모르쇠
“손해보험 텔레마케터로 일하는 지체장애 2급입니다. 남에게 보험을 설명하면서도, 저는 생활이 어려워 보험에 들지 못했습니다. 이제 조금 생활이 안정돼 운전자보험과 질병보험을 가입하려고 제 손으로 설계해 본사에 청약을 했더니 승인해 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장애인이라 가입할 수 없다는군요.” (금융감독원 정책제안 게시판, 윤아무개씨)
“손해보험의 계약 여부는 보험회사의 고유 권한입니다. 회사 인수기준에 따라 거절했다고 해서 이를 부당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금감원 답변 내용)
합리적 이유없이 장애인의 보험가입을 꺼리는 보험사들의 관행이 계속되고 있다. 보험회사들을 감독하고,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할 관련 부서도 해당 현안에 무관심하다.
1년 전인 지난해 8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장애인 보험가입 차별 조사 결과를 근거로 국무총리실과 법무부,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원장에게 관련 법률 개정과 장애인 심사기준 개선 등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장애인 차별방지와 장애시설의 재해 대비를 위해 재경부에 보험업법과 화재보험가입법 개정을 권고했지만, 두 법률 모두 개정 논의조차 진행되지 않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당시 보험업계와 공동으로 장애인의 보험 가입 때 적용했던 차별적인 기준(장애인 심사기준)을 폐지하고, 장애인 전용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장애인 전용 보험상품은 거의 판매되지 않고, 장애인들은 여전히 보험사 내부 기준을 이유로 가입을 거절당하는 현상이 되풀이 되고 있다. 장애인들은 장애인 전용 보험이 아닌 일반 보험상품에 차별없이 가입하고 싶어하지만, 보험사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보험사들이 확실한 통계자료도 없으면서, 어쨌든 일반인보다 ‘사고날’ 위험이 더 높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 가운데 정신지체장애인들이 겪는 차별은 더 심각하다. 정신지체 3급인 아들은 둔 김아무개씨는 지난달 장애인 전용 상해보험에 가입했다가 1주일 뒤 “정신장애는 가입 대상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계약 철회를 통보받았다. 상해보험에 ‘사망’ 보장이 포함돼 있는데, 현행 상법 732조에는 정신장애인의 사망 보험 가입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아들이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근거가 어딨냐”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정신장애인은 장애의 경중과 상관없이 생명보험 가입이 불가능하다”는 조항의 폐지를 법무부에 권고했지만, 이 조항이 연내에 바뀔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김수남 법무부 공보관은 “현재 상법 개정안을 마련 중이지만, 기업지배 구조와 관련된 회사법 부분에 주력해야 하기 때문에 올해 안으로는 힘들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도 이 조항을 폐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금감원 등의 반대에 부닥쳐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금감원은 “이 조항이 사망 보험금을 노린 범죄에 정신장애인들이 이용당할 소지가 있어, 좀 더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보험계리실 김동성 팀장은 “장애인의 사고 위험 파악을 위해 국민건강보험 자료를 이용하는 방안을 보건복지부와 협의 중”이라며 “자료가 확보되면 좀 더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세환 보험개발원 연구원은 “정부가 민영보험에도 건강보험처럼 저소득층이나 장애인을 위한 최소한의 보조를 해주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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