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봉 두들겨도…“속은 탑니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9일 콜금리 결정을 위해 한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시작에 앞서 물을 마시고 있다.(왼쪽) 이 총재가 의사봉을 두드려 회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이총재 평소 “통화 고삐 좨야”
청와대 개입설 불거지며 ‘멈칫’
재경부 반대에 끝내 쉬운 선택
청와대 개입설 불거지며 ‘멈칫’
재경부 반대에 끝내 쉬운 선택
9일 오전 10시2분.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인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손에 쥔 의사봉을 세차례 두드렸다. 금리 동결 결정이었다.
이날 금통위를 앞두고 이 총재에겐 전례없는 관심이 쏠렸다.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금리 동결 내지 인하가 대세였으나, 이달 들어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었다. 집값이 급등하면서 금리 인상론이 힘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이 총재에겐 분명 싫지 않은 상황 반전이었다. 이 총재는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통화정책의 고삐를 더 당겨야 한다는 소신을 거침없이 밝혔다. 정부·여당의 금리 인하 요구를 뿌리치고 콜금리를 4.5%로 묶어둔 10월 금통위 직후, 이 총재는 “정부로서는 꼭 그렇게 한다기보다는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한가지를 언급했을 뿐”이라며 ‘금리 인하론’을 일축하기도 했다. 지난달 26일 부산대 강연에선 “콜금리가 4~5%에 불과하다는 것은 문제”라고 직설적으로 얘기했다. 이 총재의 머릿속엔 부총재 시절 정치권의 요구에 밀려 금리를 내렸다가 부동산 거품의 싹을 키웠다는 뼈저린 기억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다시 반전했다. 금통위를 사흘 앞둔 6일 청와대의 김수현 사회정책 비서관이 한은을 찾아 이 총재를 면담하고 간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김 비서관은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뼈대를 세운 이다. 한은과 김 비서관은 극구 부인했지만, 청와대가 집값을 잡기 위해 통화정책에 간섭하려 한다는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갔다. 평소 통화정책이 외부 압력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던 이 총재에게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긴 것이다. 금리 인상에 반대하는 정부의 목소리도 힘을 발했다. 박병원 재경부 차관은 7일 “부동산 가격 상승과 같이 경제의 일부에서 나타나는 현상 때문에 금리를 조정해야 한다는 것에는 반대한다”며, 금리 인상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9일 금통위 직후 이 총재는 “오늘 회의에서 유독 부동산과 관련된 얘기들이 많이 오갔지만 좀더 균형 잡힌 시각에서 통화정책을 바라봐야 한다는 점을 서로 확인했다”며 콜금리 동결 배경을 설명했다. 통화정책의 독립성 논란이 불거진 상황에서, 경기 둔화와 가계 부담 증가라는 부담까지 안고 소신을 밀어붙이는 대신 쉬운 선택을 한 셈이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금리, 올리고 싶지. 하지만 올려봐, 그간 집값 오른 모든 책임을 우리가 다 뒤집어쓰는 꼴이잖아”라고 한은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다만 금통위는 언제든지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강력한 신호를 시장에 보냈다. 이 총재는 “아파트 값 급등은 매우 우려할 만한 상황”이라며 “다음달 콜금리 결정이 어떻게 될지 미리 예시하는 발언을 할 수 없지만 (부동산 문제에) 한은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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