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금리 목표치와 통화량 증가율 추이
콜금리 세차례 올렸는데…지난 해 통화량 128조 늘어
‘글로벌 자본시대’ 통화량 직접 조절 나서야
‘글로벌 자본시대’ 통화량 직접 조절 나서야
한국은행이 16년 만에 지급준비율 인상 카드를 꺼내든 지난해 11월23일, 채권시장의 한 전문가는 ‘통화당국의 외과수술’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콜금리 목표 조정이라는 일상적인 ‘식이요법’만으로는 과잉 유동성을 제거하기 어려워 결국 환부를 직접 겨냥했다는 얘기다.
한은이 5일 발표한 ‘2006년 12월 광의유동성 동향’을 보면, 지난해 우리 경제가 지준율 인상이라는 수술대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드러나 있다. 한은은 지난해 2, 6, 8월 세차례나 콜금리 목표치를 올리며 돈줄 죄기에 나섰으나, 오히려 시중 유동성은 최근 몇년 사이 가장 빠른 속도로 불어났다. 돈의 값(금리)을 올렸는데도, 돈에 대한 수요는 더 늘어난 셈이다.
카드 대란 때보다 돈 더 풀려=광의통화(M2)를 기준으로, 지난해 시중 유동성은 128조원 증가했다. 신용카드 남발로 소비 거품이 극심했던 2002년의 107조원을 넘어서면서 사상 최대의 증가 폭을 기록했다. 증가율로는 12.5%, 2002년의 14.0% 이후 가장 높았다.
특히 월별로 보면, 한은이 마지막으로 콜금리를 인상한 지난해 8월(8.2%) 이후 전년 동월 대비 증가율이 9~10월 10.8%, 11월 11.3%, 12월 12.5%로 오히려 더 가파랐다. 이성태 한은 총재가 지난해 8월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콜금리를 올린다는 건 통화량 증가세 감속을 기대하는 것이다. 2005년 10월 이후 몇차례 콜금리 인상으로 감속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한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2003년 카드 대란의 불씨를 지핀 2002년의 유동성 증가가 콜금리 인하 기간 중 벌어진 것과는 달리, 지난해 유동성 증가는 금리 인상 기조 속에서 나타난 현상이라 더 대비된다.
통화 정책 손발 묶이나?=한은의 의지와 달리 유동성이 급증한 이유를 해외 변수에서 찾는 전문가들이 많다. 최공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본시장 개방에 따른 글로벌 유동성 영향으로 국내 통화정책의 약효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며 “국내 유동성이 국내 통화정책보다 국가 간 금리 차이나 환율 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이제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금융정보 서비스업체인 와이즈인포넷의 장보형 책임연구원도 “달러 약세와 일본의 저금리가 합쳐 글로벌 유동성을 퍼내는 국면에서 한 나라의 중앙은행이 취할 수 있는 정책의 여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이는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안고 있는 공통된 고민”이라고 말했다.
최석원 한화증권 채권전략팀장은 “지난해 부동산 부문의 유동성 수요가 해외 차입을 통해 쉽게 메워질 수 있었던 것도 글로벌 유동성이라는 조건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 말했다.
올해는 유동성 증가세 둔화될 듯=전문가들은 한은이 지난해 말 콜금리 인상 대신 지준율 인상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온 것도 결국 한계에 부닥친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높이려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해석한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개방 경제 아래선 금리를 무턱대고 올리면 해외로부터 들어오는 유동성이 더 늘어날 수 있다”며 “결국 지금은 조금 비시장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지준율 인상이나 외화 차입·대출 감독과 같은 보조 카드를 함께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리 조정을 통한 간접적 방법뿐 아니라 직접적인 통화량 조절이나 은행에 대한 공동 조사권 행사 등을 통해 통화정책을 보완해야 한다는 얘기다.
권 수석연구원은 “올 들어 유동성 증가세는 한고비 꺾이는 것 같다”며 “다만 지난해 급증한 유동성이 당분간 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권 수석연구원은 “올 들어 유동성 증가세는 한고비 꺾이는 것 같다”며 “다만 지난해 급증한 유동성이 당분간 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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