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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금융·증권

주가 떨어져 전환반대 ‘역선택’

등록 2008-07-20 21:51

‘용의자의 딜레마’ 국민은행 투자자의 선택
‘용의자의 딜레마’ 국민은행 투자자의 선택
한광덕 기자의 투자 길라잡이
KB지주 ‘용의자의 딜레마’
‘15%제한’ 꼼수로 불신의 게임 전락

국민은행이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주식매수청구권’이 회사와 투자자들간 이해상충 게임으로 변질되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주회사 전환에 반대하는 주주들에게 주식을 6만3293원에 팔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그런데 국민은행 주가가 6만원을 밑돌면서 투자자들은 청구권 가격과 시가의 차이를 노린 차익거래에 나서기 시작했다. 과다한 청구권 행사로 인한 자금 부담을 우려한 국민은행 쪽은 매수 청구 주식수가 총발행주식의 15%를 초과하게 되면 지주사 전환을 중단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

■ 누구의 도덕적 해이인가 경영진이 합병, 분할합병, 영업양수도 같은 기업 재편을 결정하면서 이에 반대하는 주주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주식을 되사주는 장치가 주식매수청구권이다. 좀 거칠게 말하면 노잣돈 쥐어 줄테니 훼방놓지 말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훼방꾼은 기존 주주가 아니라 주가가 떨어져 매수청구 가격을 밑돌 때 들어오는 신규 주주다. 이들은 매수청구권을 얻기 위해 무조건 합병 등에 반대표를 던진다. 합병을 추진하는 회사의 주식을, 합병을 지지하는 투자자가 아닌 반대하는 투자자가 매수하는 ‘역선택’이 일어나는 것이다.

회사가 매수청구자금을 고스란히 떠안는다는 것은 지주사 전환에 협조한 ‘선량한’ 주주로부터 단기 차익만을 노린 ‘불순한’ 주주에게로 부를 이전시키는 불공정한 게임이므로 국민은행은 이런 사태를 막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고 매수청구 물량이 15% 이내여야 한다며 경기의 룰을 뒤늦게 바꾼 것은 명백한 ‘반칙’이다. 국민은행은 이를 ‘정정’신고란 이름으로 피해갔지만 단순한 기재 오류를 바로잡는 정정이 아니라 지주회사 성사 요건이라는 중대한 내용을 추가한 ‘변경’공시로 볼 수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을 지향한다는 국민은행이 상황이 달라졌다는 이유로 공시의 핵심을 일방적으로 뒤집는 것은 스스로 신뢰를 갉아먹는 행위다.

한광덕 기자의 투자 길라잡이 /
한광덕 기자의 투자 길라잡이 /
■ 용의자의 딜레마 또는 공유지의 비극 지금 국민은행 주주는 지주회사 전환에 찬성할 것인가, 반대한 뒤 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다. 이런 상황은 경제학의 게임이론 중 하나인 용의자의 딜레마(표)와 유사하다.

국민은행 주주로서는 모두 협력(지주사 찬성)해 장기적 기업가치의 상승을 공유하는 게 이상적인 전략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게임은 참가자들인 주주들간에 의사소통이 힘들어 상대가 어떤 전략을 갖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자신이 선택을 해야 하는 불완전정보 게임이다. 자신은 찬성했지만 다른 주주가 배신해 매수청구권을 행사한다면 주주가치를 훼손당할 수 있다. 반면 다른 주주가 찬성하더라도 자신은 매수청구권을 행사해 빠져나가면 단기적으론 이익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상대 주주의 선택과 무관하게 지주회사를 반대하는 것이 자신의 수익이 항상 커지는 ‘우월전략’이 된다. 이 게임은 대칭적이므로 상대방도 같은 논리로 배신의 길을 택해 우월전략의 ‘균형’이 이루어지면 역설적으로 지주사 무산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낳은 채 모두 패배자가 될 것이다.


국민은행이 게임 규정을 ‘15% 룰’로 변경해 선수들끼리 서로 의심하게 만드는 구조를 강화시킨 건 ‘공유지의 비극’으로 연결될 수 있다. 너도 나도 가축을 풀어놔 풀이 메말라가고 결국엔 가축마저 죽고 마는 목초지로 설명되는 공유자원의 비극은 배제성(사용권의 제한)은 없지만 경합성(사용량의 제한)이 있는 데서 비롯된다. 현재 ‘국민초원’의 목동(주주)이라면 누구나 방목(매수청구권)을 할 수 있지만 실제 뜯어먹을 수 있는 풀의 양은 15%밖에 안된다. 종국엔 목초지(지주회사)가 황폐화하고 만다. 사적인 이익 욕구에 조바심을 불어넣어 사회적 후생을 희생시킬 위험이 커진 것이다.

k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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