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양적 완화’ 발언(8월27일) 후 코스피-국채-환율 추이
원화 7.1% 올라…위안·엔보다 절상률 높아
주식·채권 강세로 외국인 7조4천억원 사들여
정부 마땅한 대책 없어 무력하게 지켜보기만
주식·채권 강세로 외국인 7조4천억원 사들여
정부 마땅한 대책 없어 무력하게 지켜보기만
세계 환율전쟁이 국내 금융시장에 거센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나라의 통화·외환 정책을 교란시켜 거시정책 기조에 혼선을 빚게 하는가 하면, 과거처럼 한꺼번에 몰려든 투기성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금융시장을 또한번 흔들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 넘쳐나는 유동성, 한국에 직격탄 환율전쟁의 단초는 지난 8월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의 경기부양을 위한 통화정책 발언이었다. 기준금리를 조정해온 기존 정책과는 다르게 달러를 찍어내는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 정책을 시사한 것이다. 달러 약세가 예상됨에 따라 미 증시는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이어 일본이 6년 만에 외환시장에 개입해 환율전쟁에 기름을 부었다.
직격탄은 우리나라가 맞았다. 버냉키 의장 발언 이후 10월11일까지 한·중·일 환율 추이를 보면, 달러 대비 원화가 가장 절상률(원화강세)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달러에 견준 위안은 1.9%, 엔은 3.1% 올랐지만, 원화는 7.1%나 올랐다. 글로벌 환율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과 일본보다 우리나라가 더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버냉키 발언 직후부터 우리나라의 주식·채권·원화는 급등하는 이른바 ‘트리플 강세장’을 만들어 갔다. 외국인은 9월 한 달 동안에만 코스피에서 4조3304억원, 채권시장에서 3조1550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코스피는 1800고지를 넘어선 지 19거래일 만에 1900선을 넘어서기도 했고, 달러당 원화 값은 1100원대까지 강세를 보이고 있다.
■ 통화·외환정책 무력화 오는 14일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고심은 커지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인상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금리를 인상하면 금리 차익을 노린 자금까지 국내로 들어와 원화강세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이 한은으로선 고민스런 대목이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우측 깜빡이를 넣으면 우회전한다”며 금리인상 기조를 밝혔지만, 시장금리는 뚝뚝 떨어지고 있다.
주가와 채권 값이 반대로 간다는 경제학원론과 달리 주가는 치솟고 있는데, 채권 값도 따라 상승(채권금리 하락)하고 있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8일 현재 3.28%로 사상 최저치인 3.24%에 근접해 있다. 외국자본이 우리나라 채권을 계속 사들이면서 채권 값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문박 엘지(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외국인 채권투자 자금의 유출입이 빈번해지면 통화정책 당국의 금리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외환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원화 가치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 정부는 내놓을 만한 대책이 없다. 정부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외환시장에 함부로 개입할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과 금감원은 지난 5일 외국은행 서울지점을 대상으로 자본 유출입의 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공동검사에 나서면서 규제카드를 빼들었지만, 이 역시 반짝 효과에 그쳤다.
■ 외국인 돈 잔치 후폭풍 우려 외국에서 물밀 듯이 들어오는 돈은 또다른 우려를 낳고 있다. 외부적 요인으로 일시에 대거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2008년 9월 금융위기 때에도 외국자금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지난달 증시에서 국가별 외국인 순매수는 룩셈부르크 5544억원, 네덜란드 5025억원 등이 1, 2위를 기록했다. 두 나라 모두 조세회피지역이다. 김병연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조세회피지역 투자자의 과거 순매수성향을 보면 순매수기간이 보통 1~3개월로 연속성이 크지 않았다”고 말했다. 외국인의 계속되는 순매수로 ‘바이(Buy) 코리아’ 기대감이 크지만 ‘바이(Bye) 코리아’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우리나라 경제가 펀더멘털(경제 기초여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외국인들의 자본거래로 금융과 실물 간의 불균형이 일어나고 있다”며 “글로벌 유동성이 실물경제로 들어가지 않고 투기적인 자금으로 이용될 경우 자산 버블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원-달러 환율이 1110원대로 다시 떨어진 11일 오후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모니터를 통해 거래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지난달 증시에서 국가별 외국인 순매수는 룩셈부르크 5544억원, 네덜란드 5025억원 등이 1, 2위를 기록했다. 두 나라 모두 조세회피지역이다. 김병연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조세회피지역 투자자의 과거 순매수성향을 보면 순매수기간이 보통 1~3개월로 연속성이 크지 않았다”고 말했다. 외국인의 계속되는 순매수로 ‘바이(Buy) 코리아’ 기대감이 크지만 ‘바이(Bye) 코리아’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우리나라 경제가 펀더멘털(경제 기초여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외국인들의 자본거래로 금융과 실물 간의 불균형이 일어나고 있다”며 “글로벌 유동성이 실물경제로 들어가지 않고 투기적인 자금으로 이용될 경우 자산 버블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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