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 부실 경고
이자만 내며 버티는 ‘무늬만 장기대출’ 많아
집값 하락·금리 상승기땐 가계부실 불보듯
일시상환 비중 높아 연체율 낮지만 불안불안
이자만 내며 버티는 ‘무늬만 장기대출’ 많아
집값 하락·금리 상승기땐 가계부실 불보듯
일시상환 비중 높아 연체율 낮지만 불안불안
허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주택담보대출은 단지 대출 규모가 커졌을 뿐 아니라, 상환 방식과 만기구조가 매우 불안정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로 과거에 비해 만기가 길어지고 분할상환의 비중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일시상환의 비중이 전체 주택담보대출 잔액의 절반에 육박할 정도로 높은 상황이다. 더욱이 분할상환의 경우에도 과도한 거치기간을 설정해 원금 상환은 뒤로 미루고 이자만 갚아나가는 ‘무늬만 장기대출’인 사례가 많다고 허 위원은 지적했다. 실제 지난 6월 말 현재 7개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 가운데 원금과 이자를 모두 갚고 있는 비중은 21%(48조4304억원)에 불과했고, 나머지 79%(182조946억원)는 이자만 갚아나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한겨레> 9월7일치 1·5면 참조)
허 연구위원은 “단기, 변동금리, 일시상환 대출이 많은 우리나라 주택담보대출은 주택가격 하락과 금리 변동에 취약하고, 잦은 차환 위험도 간과할 수 없다”며 “차환 시점에 소득이 줄어들거나 주택가격이 하락하는 충격이 올 경우 차환 위험을 극대화시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우리나라 주택담보대출의 연체율이 낮은 것과 관련해서는 일종의 ‘착시현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허 연구위원은 “일시상환 방식이 다수를 차지해 원금상환 부담이 낮고 아직까지 큰 규모의 거시경제적 충격이 도래하지 않아 연체율이 낮게 나온다”며 “(현재와 같은 가계부채 규모에서)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이 도래한다면 사태의 추이를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허 연구위원은 또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의 지급이자비율이 우리나라의 경우 2004년부터 빠르게 상승해, 현재 부채상환 부담은 영국·미국·일본보다 높다”며 “여기에 원금상환이나 차환의 부담을 반영한다면 단기대출이 다수를 차지하는 우리나라 가계의 실제 금융 부담은 훨씬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 주택담보대출이 이처럼 외부 충격에 취약한데도 정부가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목적으로 디티아이 규제를 완화한 것은 문제가 있다”며 “금융당국은 디티아이 비율을 유지하고, 대출 총량뿐 아니라 만기 및 상환 조건별 대출 비중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날 세미나에 토론자로 나선 장민 금융연구원 국제거시경제실장은 “디티아이 규제 완화는 저소득층의 가계부채 구조를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며 “일각에선 가계부채의 약 70%를 소득 상위 40% 계층이 갖고 있어 문제될 게 없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도 일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에서 비롯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연구위원은 또 “디티아이 규제를 풀어 주택담보대출 수요를 늘리는 정책은 장기적으로 부동산의 거품 붕괴 가능성을 키울 우려가 있기 때문에 정부는 내년 3월에 원상태로 복귀시켜야 한다”며 “디티아이를 주택시장 대응 장치가 아니라 가계의 재무건전성을 강화하는 정책 수단으로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현정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도 “현재 우리나라 주택담보대출의 특징은 대공황 이전 미국과 유사하다”며 “만기를 장기화하고 분할상환 비중을 늘리는 등 주택담보대출의 상환 구조를 바꾸는 게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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