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지수가 장중 1966.99까지 올라가고 원-달러 환율이 1104원까지 내려가는 등 국내 금융시장이 크게 요동친 5일 오후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바쁘게 매매주문을 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실적과 동떨어진 유동성 장세
금융시장 교란·거품 우려 커져
금융시장 교란·거품 우려 커져
미국의 2차 양적완화 조처로 우리나라 금융시장이 연일 유동성 장세라는 달콤한 ‘약’에 취해 있지만, 외환시장 급변에 따른 교란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 달러 유입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식시장에 돈이 계속 쏠리는 반면, 채권시장에선 금리 인상과 자본유출입 규제 움직임을 감지한 자금들이 벌써부터 빠져나가고 있다.
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달러화 약세로 닷새째 하락세를 이어갔다. 전날보다 0.2원 내린 1107.3원으로 연중 최저치인 1104.1원에 바짝 다가섰다. 전날 연중 최고치를 경신한 코스피 지수는 장중 1966.99까지 치솟았다가 3.54(-0.18%) 내린 1938.96으로 숨고르기를 했다. 이날 외국인은 7919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국내 금융시장은 최근까지 2차 양적완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트리플 강세’(주식·채권값·원화가치 상승)를 이어왔다. 주가는 2000 고지를 향해 달려가고, 원-달러 환율은 1100대로 내려왔다. 외국인의 국내 채권투자로 채권금리(채권값 상승)는 뚝뚝 떨어져 지난달 15일엔 연중 최저치인 3.05%를 기록했다. 금융시장으로 돈이 몰리면서 기업 실적이나 펀더멘털로 설명할 수 없는 전형적인 유동성 장세를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경기선행지수가 9개월째 떨어지고, 기업들의 3분기 실적도 굉장히 안 좋게 나오고 있는데, 지금 아무도 실적을 이야기하지 않고 지표도 쳐다보지 않는다”며 “여기서 더 오르는 것은 오버슈팅(과열)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을 지낸 폴 볼커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장은 이날 방한해 세계경제연구원 주최로 열린 특별강연에서 “양적완화로 인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전세계에 유동성이 많이 풀리고, 신흥국으로 몰리면서 그들은 거품 위기를 걱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금융시장은 당장 기준금리 인상과 자본유출입 규제를 우려한 외국인의 투자금이 채권시장에서 빠져나가는 ‘머니무브’(자금이동)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채권금리는 지난달 연중 최저치를 기록한 뒤 계속 오르고 있는 추세다. 외국인이 채권시장에서 손을 빼면 그렇지 않아도 변동성이 확대된 원-달러 환율을 다시 자극하면서 국내 금융시장은 또 한번 출렁거릴 수 있다. 멕시코와 터키는 리먼 사태 전후로 외국인 보유 채권의 22%와 40%가 각각 유출되며 환율과 금리가 급등했다.
한은 관계자는 “채권에 거품이 끼어 있다는 것은 시장의 상식”이라며 “외국인들이 채권 차익을 챙기기 위해 일시에 이탈할 수 있는 우려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 자료를 보면, 10월 말 현재 외국인 투자금은 채권 79조236억원, 주식 340조5570억원 등 419조5806억원에 이른다.
한편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은 오는 15일부터 한국씨티은행과 에이치에스비시(HSBC)를 상대로 추가 공동검사를 실시하는 등 외환시장의 쏠림 현상에 대한 검사를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당국은 지난달부터 진행한 특별검사에서 일부 외국환은행 지점이 선물환거래 등에서 법규를 위반한 사실을 적발해 최대 업무정지까지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혁준 이재성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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