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교체·재선임 36명중 21명 ‘권력기관 출신’
외부 ‘바람막이’ 기대감에 환골탈태 요구 묵살
외부 ‘바람막이’ 기대감에 환골탈태 요구 묵살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맞아 선임된 증권사 등 제2금융권의 사외이사가 검찰·국세청·금융감독원 등 힘 있는 기관 출신의 인물로 채워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도덕적 해이와 업계 유착 문제로 금융권 전반의 환골탈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과거와 마찬가지로 권력기관 인사들이 사외이사를 독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금융회사들이 사외이사제를 내부 통제시스템 강화라는 애초 취지와 달리, 외부의 바람막이로 활용하는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16일 <한겨레>가 증권사 공시자료를 통해 집계한 결과, 이번 주총에서 새로 뽑거나 재선임하는 사외이사 36명 가운데 21명이 이들 힘 있는 기관 출신인 것으로 드러났다.
대신증권은 오는 27일 주총에서 사외이사로 서울지방국세청장과 보건복지부 장관 출신인 김성호씨를 재선임하고, 황인태 전 금융감독원 전문심의위원과 이인형 전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을 새로 뽑는다. 유진투자증권도 같은 날 사외이사로 김갑순 전 서울지방국세청장, 이홍재 전 서울지검 외사부장을 새로 뽑고, 유관희 전 금융감독원 회계기준심의회 위원을 연임시킬 예정이다. 동양종합금융증권도 같은 날 이달곤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이동근 전 서울지검 서부지청장을 선임한다. 현대증권도 같은 날 박충근 전 대구지검 서부지청장을 새 사외이사로 영입하고, 이철송 전 재정경제부 세제발전심의위 위원을 연임시킬 예정이다.
삼성증권은 다음달 3일 주총에서 신창언 전 법무부 법무실장을 사외이사로 재선임하고, 안세영 전 산업자원부 국장을 신규로 선임한다. 대우증권도 다음달 1일 주총에서 재정경제부 증권정책과장을 지낸 박진규씨를 새 사외이사로 선임한다.
앞서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지난 9일 임시 주총을 열어 박병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박 전 경제수석은 이 회사의 사외이사로 재직하다 올해 초 금융당국의 수장으로 임명된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후임이다. 보험사들도 3월 결산이어서 증권사들과 마찬가지로 5~6월에 있을 주총에서 권력기관 출신들을 사외이사로 대거 영입할 가능성이 있다.
금융사들이 권력기관 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전문성이다. 금융회사 특성상 업무 이해도가 높아야 하기 때문에 정·관계에서 전문지식과 경험을 쌓은 인물들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검찰이나 법원, 국세청 등의 출신들이 금융기관 경영에 어느 정도 조예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한 금융권 인사는 “금융사 안팎에서 권력기관 출신 인사를 추천받는 경우가 많다”며 “사외이사 재임 기간 중이나, 사임 후에 다시 입각하게 되면 외부 바람막이로 활용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이들을 사외이사로 임명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사외이사들이 이사회에서 ‘거수기’ 노릇에 그친다는 비판도 많다. 사외이사들이 지난해 말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20억원대 스톡옵션을 승인해준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라 전 회장은 금융실명제법 위반으로 중징계를 받아 일부 외국계 주주들 사이에서 스톡옵션을 보류 또는 취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이사회는 라 전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정혁준 김지훈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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