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차명거래 금지 주요 법개정 추진 내용
‘차명계좌 금지’ 국회 통과 유력
‘불법 목적만’ 불허
친목회·종친회 차명거래는 허용
명의 대여자가 자신 소유 주장 땐
재판까지 가야 회수 가능
은행도 계좌 실명 확인 넘어
실소유주 신원 확인 절차 강화
‘불법 목적만’ 불허
친목회·종친회 차명거래는 허용
명의 대여자가 자신 소유 주장 땐
재판까지 가야 회수 가능
은행도 계좌 실명 확인 넘어
실소유주 신원 확인 절차 강화
‘차명거래’는 재벌그룹 오너와 정치인 등이 일으킨 대형 금융범죄 사건에서 단골로 등장해온 수단이다. 2008년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 당시 이건희 삼성 회장이 전·현직 임원 명의로 조직적으로 관리해온 것으로 드러난 차명계좌는 무려 1199개에 이른다. 윗선의 지시를 거부하기 어려운 위계질서를 바탕으로, 이름을 빌린 계좌를 만들고 비자금을 숨겨온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평균 3개월마다 차명계좌를 옮기면서, 수천개의 계좌를 활용해 비자금 세탁을 해왔다. 심지어 고소득자들이 ‘절세 수단’으로 차명계좌를 개설하는 일도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런 현실은 차명계좌를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제도 개선 논의에 불을 지폈다. 조만간 국회 통과가 유력시되는 금융실명제법·금융정보분석원법 등의 개정안에는 범죄 행위로 악용되는 차명거래가 일어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내용들이 다수 포함될 예정이다.
우선 불법 차명계좌의 실소유주, 명의 대여자, 계좌를 개설한 금융회사 직원 모두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이 금융실명제법에 신설된다. 종전에는 차명계좌를 만든 것이 드러나도 탈세 행위를 규율하는 조세범처벌법 등 각종 개별법에 의해 간접적으로 처벌된 데 견줘, 앞으로는 불법 차명거래 행위 그 자체로 직접 처벌 대상이 되는 구조로 변하는 것이다. 예컨대 재벌그룹 오너가 종전과 같은 방식으로 임직원들을 차명계좌 개설에 동원하면, 오너와 임직원 수백명이 모두 범법자가 된다.
금융회사에 대한 제재수단이 강력해진다는 점도 두드러진 변화다. 현행 금융실명제법은 허명이나 가명 등 비실명으로 거래한 계좌를 개설해준 금융회사 직원에게 과태료 500만원을 부과한다. 하지만 법 개정이 이루어지면, 과태료가 5000만원 수준으로 오르고 계좌 실소유주 및 명의자와 함께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아울러 관련 법을 어긴 금융회사에 대해서도 6개월 이내 영업정지와 임원 해임 등의 제재가 부과될 수 있다. 대주주 등의 요청에 따라 조직적으로 차명거래 범죄에 가담해오기도 한 금융회사들을 겨냥한 조처다.
‘소유권 추정’ 조항은 흔히 재벌그룹 오너와 계열사 임직원 사이에 이루어져온 ‘합의차명’을 억제하기 위한 유인책으로 작동할 전망이다. 명의를 빌려준 계좌주가 본인의 재산이라고 주장할 경우, 계좌의 실소유주는 법적 반증 절차를 통해서만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 불법 목적으로 차명계좌를 개설했다면, 재판 과정에서 이런 사실이 드러날 소지가 있기 때문에 불법 차명거래를 사전에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이와 함께 금융회사가 계좌의 실명만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소유주의 신원을 확인하도록 거래 절차가 강화된다. 법인의 경우에는 25% 이상 지분을 가졌거나 다른 수단으로 실질적 지배권을 행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확인하도록 했다. 고객의 신원 확인을 할 수 없을 때는 계좌 개설 등 거래를 거절할 수 있는 조항도 신설된다.
이번 법 개정은 1993년 금융실명제법 도입 이후 끊임없이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제도의 구멍을 메우게 됐다는 데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애초 국회에 발의된 입법안들에 견줘서는 다소 후퇴한 모양새다. 국회에는 차명거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범죄 목적이 아닌 차명계좌는 사전등록으로 허용하는 법 개정안이 제출된 바 있지만, 논의 과정에서 불법 행위 목적의 차명거래만 근절하는 쪽으로 내용이 수정됐다. 이른바 ‘선의의 차명거래’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를 일일이 입증해서 걸러내기 어렵다는 금융당국 쪽의 견해가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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