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결재 보는 등 공격적 행보
한때 임영록 회장 편으로 분류
최근 전산시스템 교체 문제제기
임 회장과 날카로운 대립각 세워
“원칙 중시하는 스타일” 평가 속
금융당국 배경있는 게 아니냐 추측
“보이지않는 실세들 싸움” 관측도
한때 임영록 회장 편으로 분류
최근 전산시스템 교체 문제제기
임 회장과 날카로운 대립각 세워
“원칙 중시하는 스타일” 평가 속
금융당국 배경있는 게 아니냐 추측
“보이지않는 실세들 싸움” 관측도
정병기(59) 국민은행 상임 감사위원의 잇따른 파격 행보는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케이비(KB)금융의 ‘집안싸움’을 촉발시킨 핵심 당사자인 정병기 감사에 대한 금융권 안팎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는 최근 케이비금융지주가 주도하는 은행 전산시스템 교체 과정에 심각한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은행 이사회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지난 19일 금융감독원에 검사를 요청하는 초강수를 뒀다. 역대 은행 감사들이 대체로 별다른 존재감 없이 형식적 감사에 그치다 간 데 견주면, 정 감사의 행보는 그야말로 파격적이다.
그가 은행 감사로 선임된 것은 지난 1월3일 국민은행 임시주주총회를 통해서다. 경제관료 출신의 정 감사는 기획재정부 국유재산과장과 감사담당관, 전국은행연합회 감사 등을 거쳤다.
국민은행 내부통제 부실에 대한 우려를 걷어내려는 듯 정 감사의 행보는 은행 입성 초반부터 공격적이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은행 인사 시스템을 바로잡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3월에는 상임 감사위원 직무 규정 개정을 발판으로, 은행장에게 올라가는 모든 결재 서류가 자신을 거치도록 했다.
당시에도 국민은행 내부에선 감사의 권한 남용 여부를 두고 상당한 논란이 일었다. 국민은행의 한 지점장은 “연초에 원래 인사가 예정돼 있다고 공지가 떠서 2만여명이 다 기다리고 보고 있었는데, 감사 때문에 인사가 미뤄지면서 내부적으로는 불만이 많았다. 개입이 지나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 말했다.
반면에 제대로 된 감사 구실을 하겠다는 것을 두고 비판할 명분이 어디 있느냐며 긍정적 평가를 내리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국민은행의 한 관계자는 “종전에 감사들은 뭘 하고 갔는지도 모르게 거쳐가는 경우가 많았다. 앞으로 사실관계를 따져봐야겠지만 문제로 드러난 부분에 대해 감사 역할을 제대로 하려고 하는 건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정 감사의 공격적 행보를 두고서는, 우선 그가 공직에 몸담고 있을 때부터 다져온 업무 처리 방식에서 나온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와 함께 기획재정부에서 일했던 전·현직 관료들은 한결같이 “다소 거칠고 물불 안 가리는 다혈질적 성격이지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한 추진력이 대단했다”고 전했다.
일부에선 정 감사가 이런 특유의 업무 처리 방식을 강하게 밀고 나갈 수 있는 데는 배후에 막강한 뒷심(배경)이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더해진다. 한 금융지주의 임원은 “(정 감사가) 은행연합회 감사에 이어 국민은행 감사를 맡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금융기관 감사를 두번이나 연달아 맡을 수 있었던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하더라”고 말했다.
국민은행 감사가 되려면 사외이사 6명으로 구성된 ‘감사위원 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을 거쳐, 주주총회에서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한다. 대개는 이런 절차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특정 인사가 내정돼왔다. 정 감사 스스로가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밝힌 것처럼, 그를 감사로 추천한 인사는 임영록 케이비금융지주 회장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공직 시절, 옛 재무부 은행제도과 과장과 사무관으로 함께 일한 인연이 있다. 하지만 정 감사는 최근 전산시스템 교체 과정에서 불거진 금융지주-은행 간의 갈등 구도에서 임 회장과 대립각에 서 있다. 지난 3월 은행장 결재 서류를 모두 사전에 들여다보겠다고 했을 때, 임 회장 쪽 인사로 분류되면서 행장을 견제하려는 의도라는 의심을 받은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된 셈이다. 이번에는 오히려 이건호 행장과 공조를 취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에 대해 금융권 안팎에선 “(정 감사가) 누가 추천해줘서 감사가 됐다는 사실에 연연하지 않고 일을 하는 스타일”(전직 기획재정부 관료)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동시에 “임 회장의 추천으로 감사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더 큰 배경으로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의 지지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금융권 관계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관료 출신인 임 회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어윤대 당시 케이비금융지주 회장이 지주 사장으로 영입한 인물인데, 아이엔지(ING)생명 한국법인 인수 문제로 어 회장과 틀어진 대신 당시 견해를 같이한 사외이사들의 지지로 회장 자리에 올랐다. 정 감사의 영입 경로가, 금융연구원 출신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금융당국 쪽 지지로 선임된 이건호 행장 쪽과 더 닮았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를 관전할 필요도 있다는 얘기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이번 갈등은 전산시스템 교체 과정에서 업체들의 운명이 엇갈리게 되는 아이비엠(IBM)과 유닉스 서버 간의 싸움인 동시에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 등을 각각 낙하산으로 내려보낸 ‘보이지 않는 스폰서(실세)들의 싸움’인 것으로 읽힌다”고 말했다. 황보연 송경화 기자 whyno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