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공직 떠나는 김광수 전 금융정보분석원장 쓴소리
은행 공적기능에 감시강화 필요
사익 중시하는 관료는 공직 떠나야
은행 공적기능에 감시강화 필요
사익 중시하는 관료는 공직 떠나야
“30년 공직생활에서 남은 건 ‘학연’이나 ‘지연’이 아닌 ‘업연’(업무를 같이 한 인연)인 것 같다. 좀더 일하고 싶다는 기대가 있었지만 (현재 처한 상황을) 평온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가 무죄로 풀려난 김광수(57) 전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이 결국 공직을 떠난다. 그는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장을 맡고 있던 2008년 부산저축은행그룹 쪽으로부터 청탁과 함께 4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2011년 6월 구속 기소됐다가 지난해 10월 대법원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지난해 11월 파면됐던 직장인 금융위로 복직했지만 반년가량 보직을 받지 못하고 있다가 지난 19일 사표를 냈다. 1급 간부 자리인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으로 내정되기도 했지만, 청와대 인사 검증 절차를 통과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4년 행정고시 27회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김 전 원장은 조직 내부에서 신망이 두터운 경제관료 출신으로, 검찰 수사로 옥고를 겪다가 무죄가 확정됐다는 점에서 ‘제2의 변양호’(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29일 서울 프레스센터 금융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난 김 전 원장의 표정은 담담해보였다. 최근 <역경>에 빠져 있다는 그는 “아무리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라도 ‘시공’이 잘 맞아야 남들에게 잘 알려질 수 있다. 공직에 있다보면 시공이 잘 맞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책상에 위에는 <역경잡설> <헤지펀드의 진실-펀드매니저의 고백> 따위의 책들이 보였다.
그는 공직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1998년 동화은행 등 5개 은행 구조조정을 맡았던 때”를 꼽는다. 김 전 원장은 당시 금융감독위원회에서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은행 점포가 폐쇄된 첫날, 미처 예견하지 못한 일들이 하나둘씩 터져나왔다. 당장 구조조정된 은행에서 발행한 수표가 유효한지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자칫 중소기업들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기업들의 불이익이 없도록 조처하느라 밤새 진땀을 흘려야 했다.
김 전 원장이 무죄판결을 받고 난 뒤 저축은행 관계자들의 부실한 진술에 의존한 무리한 검찰 수사였다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저축은행피해자대책위원회 쪽에선 사법당국에 대한 감사를 청구할 만큼 불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근본적으로 저축은행 사태를 초래한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금융당국에 면죄부를 줬다는 것이다. 김 전 원장을 직접 겨냥했다기보다는 경제관료에 대한 피해자들의 인식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었다.
열달가량 옥고를 치르면서, 개인적으로는 ‘억울함’을 다스리는 시간이었지만 조직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는 “경제가 한창 성장하던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조금만 정책을 펴더라도 모든 계층에 긍정적 효과가 돌아갈 수 있는 시기였지만 그 이후로는 이득을 얻는 쪽과 손해를 보는 쪽으로 확연하게 구분되고 있다. 경제관료들이 ‘효율’보다는 ‘균형’을 중요시하면서, 경제성장에 따라 피해를 보는 계층을 배려하는 정책을 펴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금융정책에 오래 몸담아온 그는 특히 “은행의 공적 기능 수행에 대한 감시 강화가 좀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관료가) 사적 이익 추구에 사로잡혀 있다면 당장이라도 공직을 그만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모피아’(재무부+마피아)에 쏟아진 사회적 비판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김 전 원장은 아직 향후 거취를 결정하지는 않았다. “사표를 냈다는 기사가 언론에 나오니, 여기저기서 전화가 걸려오더라.(웃음) 후배 공무원들에게 아쉬운 소리(각종 청탁)를 해야 하는 곳에서 일하진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들의 행정고시 2차 시험이 끝나는 7월초에 가족 여행부터 다녀올 생각이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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