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경영권이) 외국 자본에 넘어가는 것은 별도 판단이 필요하다.”
박상용 공적자금관리위원회 공동위원장(연세대 경영학과 교수)은 지난 24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우리은행은 국내 대기업 상당수를 여신고객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외국 자본이 경영을 ‘풀 컨트롤’(완전 장악)하게 되면 국민적 우려가 커질 것”이라며 “우리은행 민영화는 단순히 경제적 작업이 아니며, 상당 부분은 정치적 판단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23일 정부는 우리은행 민영화 방안으로 경영권(30%)과 소수지분(0.5~10%)을 따로 파는 ‘더블 트랙’ 매각 방안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박 위원장은 사모펀드를 포함해 법의 테두리 안에서 모든 투자자의 입찰 참여를 허용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외국 자본이 경영권을 가져가는 것에 대해서는 제동이 걸리게 될 것이란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정부 발표가 나온 다음날, 서울 연세대 근처에서 박 위원장을 만나 우리은행 민영화 방안과 관련한 견해를 들었다. 그는 평소 금융·경제 정책에 대해 본인의 소신을 강단 있게 밝히는 학자로 평이 나 있다. 2002년 옛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을 지내던 시절, 신용협동조합 출자금을 예금자보호 대상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펴다가 단위 신협들로부터 급여가압류 조처를 당한 일이 오래도록 회자된다.
-경영권이 팔리면 국내 첫 대주주 지배 은행이 된다. 과거 ‘주인 있는 은행’에 대해 그 누구보다 반대한 걸로 아는데?
“우리나라 은행은 원래 민간에서 출발해 5·16 사태 이후 국유화됐다가 1980년대와서 민영화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부 지분은 팔아지만 국유화 시절과 달라진 점은 없었다. 정부가 그대로 통제를 한 것이다. 그러다가 1993년 집권한 김영삼 정부가 ‘금융전업군’ 육성에 한창 나선 적이 있다. 경영 효율을 위해 주인을 찾아주자는 취지였다. 나는 강력히 반대했다. (은행은) 주인이 도덕적 해이에 빠지면 경제에 미치는 폐해가 너무 크다. 일반 기업의 주인이 자기가 투자한 돈에 견줘 약 20배에 달하는 규모의 자산을 지배한다면 은행은 100배 이상의 높은 지렛대 효과가 있다. 또 은행은 예금자 보호 필요성도 있어서 기업성이 너무 강조되면 위험성이 높다고 봤다.”
-이번에는 왜 ‘주인 찾기’에 나섰나?
“1999년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을 할 때 당시 이헌재 위원장이 은행 지배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보라고 하더라. 사외이사제도를 도입하고 성과 평가 및 보상 체제를 제대로 도입해보자고 했다. 그런데 책임경영을 위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자율경영이 작동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 ‘관치’보다 더한 ‘권치’에 은행이 휘둘려왔기 때문이다. 주인이 없는 은행에서 후진적 정치구조가 결합되다 보니 온갖 군데서 간섭하는 부작용이 나온 것이다. 주인이 없더라도 ‘주인이 있는 것처럼’ 승계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면 좋은데 우리 실정은 그러질 못했다. 시이오(최고경영자)에 대한 성과 보상이 높아지다 보니 그 자리를 탐내는 이들이 많아졌고 정치적으로 결정이 되더라. 정답은 없다. 은행을 사금고화할 우려가 있는 산업자본이 한다고 하면 막아야겠지만, 금융만 하던 곳이라면 시도해볼 수 있는 것 아니냐.”
-‘주인 찾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해보지도 않고 장담할 일은 아니다. 종전에 팔 때는 덩치가 너무 컸다. 그래서 지방은행을 쪼개서 매각했다. 상황은 이전보다 더 유리해졌다.”
-외국 자본의 경영권 인수 외에는 다 허용이 가능한가? 사모펀드의 입찰 참여는 어떻게 봐야 하나?
“사모펀드도 정서적으로 부정적 측면이 있지만 정부가 입찰 참여를 막을 수는 없다. 다만 사모펀드는 그 자체로 규제를 많이 받고 있다. 사모펀드의 투자자(LP) 중에 산업자본이 일부 포함돼 있다거나 하면 사모펀드의 경영권 인수는 쉽지 않을 거다.”
-교보생명만 입찰에 나서면 어떻게 되나?
“교보만 나선다면 유효경쟁이 성립되지 않는다. 일부에선 들러리를 앞세워 입찰하는 데 대한 우려도 있는 것 같은데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우리가 그 정도는 파악하고 막을 수 있지 않겠나.”
-보험회사와 은행 간 시너지가 크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은행을) 팔려는 쪽에서 심각하게 고민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사는 쪽에서 고민할 문제다. 다만 보험회사가 은행을 인수할 때 금융산업 발전을 크게 저해한다면 막아야 하겠지만 그럴만한 사안은 아니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교보생명이 컨소시엄을 구성할 때 재무적 투자자들과 과도한 수익보장 계약을 맺을 수도 있지 않나?
“우려가 나올 수 있다. 보험회사가 부실해지면 은행이 부실해지는 것에 버금가는 파장이 있다. 그래서 그 부분은 철저히 검증할거다.”
-예금보험공사와의 경영 정상화 이행 약정(MOU)은 유지되나?
“이행 약정은 두더라도 그 내용은 하반기에 좀 개선할 생각이다. 은행 경영진이 주주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경영목표를 바꿔야 한다. 예를 들어 경영목표에 ‘총자산순이익률’(ROA)만 들어가 있는데 순이익을 투자자들의 자본금으로 나눈 값인 ‘자기자본이익률’(ROE)도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경영권 지분 매각이 유찰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데?
“만일 경영권 지분 입찰이 유찰되고 소수지분 입찰(0.5~10%)에선 성과가 나온다면 다시 매각 방식을 정하게 될 거다. 경영권 지분 매각이 유찰되는데 계속 몇년씩 이 방식을 고집해선 안 된다. 다만 소수지분 입찰로만 갈 경우엔 지분이 완전히 분산돼서 무주공산이 될 수 있다. 주주협의회 같은 걸 만들어 경영 참여에 나설 과점주주를 모아야 한다.”
-과점주주는 어떻게 모일 수 있나?
“지분 4~5%씩 가진 대여섯곳의 과점주주가 장기적으로 주식을 보유하면서 경영에 개입해야 하는데 이런 주체들을 찾기가 어렵다. 게다가 이들의 의견을 담아낼 그릇(기구)을 만드는 것도 쉽지는 않다. 과거 케이티앤지(KT&G)가 민영화할 때 주주협의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법령에 집어넣었지만 실제로 구성된 적은 없었다. 그만큼 강제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은행들을 보면 뚜렷한 경영주체가 없는 곳일수록 정부 간섭을 많이 받는다. 신한은행은 처음부터 소수지분을 갖고 있는 재일동포들이 일종의 주주협의회와 유사한 활동을 해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은행도 이렇게 갈 수 있도록 과점주주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박상용 위원장은 “대부분 나라에서 금융위기가 오면 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하지만 3년 이내에 금융시스템을 복원하고 나서 민영화한다. 이렇게 13년이나 공적 통제를 받으면서 질질 끌어온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조기 민영화를 최우선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또 주인있는 은행을 반기면서 환영할 필요는 없지만 막을 필요도 없다. 우리은행이 (낙하산 인사 등의 폐해를 고스란히 겪어온) 국민은행의 경로를 밟아선 안된다”고 말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