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조선시대 지방 고을의 송사를 가름한 ‘원님 재판’은 변 사또를 떠올리게 한다. 춘향이를 묶어놓고 “네 죄를 알렷다!”라고 호통치는 장면이 여기에 겹쳐진다. 최근 금융당국의 제재가 ‘원님 재판’과 닮았다는 혹평을 받고 있다. 공정성과 투명성이 땅에 떨어졌다는 점에서다.
지난 21일 금융감독원은 케이비(KB)금융의 임영록 지주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에 대한 경징계를 결정했다. 이번 케이비금융 제재를 두고선, 6월9일 두 수뇌부에게 중징계가 사전통보된 이후 이날 제재안이 수정 의결되기까지 각종 로비설과 의혹이 난무했다.
우선 금감원이 검사를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서둘러 중징계 제재안을 통보하면서,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표적’ 검사가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그러다가 감사원이 이례적으로 금감원의 제재 보류를 요청하면서는 케이비금융 쪽의 구명로비설이 전면에 부각됐다. 결국 중징계에서 경징계로 징계 수위가 완화되자, 정치권(새정치민주연합 김기식 의원)에선 “제재심의위원의 면면을 볼 때 공정성이 의심된다. 모피아(재무관료+마피아)의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다.
현재 관행대로라면 금융당국의 제재는 끊임없는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소지가 높다. 금감원은 그동안 여섯 차례에 걸쳐 케이비금융 제재안을 심의했다. 특히 마지막 회의는 10시간이 넘게 걸린 ‘마라톤 회의’였다. 하지만 이날 회의에서 제재심의위원들이 어떤 발언을 했고 어떤 근거에서 징계 수위가 완화됐는지를 명확하게 알 길은 없다. 제재심의위는 위원 명단 공개는 물론이고 회의 참관도 허용되지 않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11년부터 불공정 거래 등을 제재하는 전원회의를 외부에 공개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금감원은 이르면 25일 이번 제재 내용을 공시할 예정이지만, 전례를 보면 이 역시 크게 기대할 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10월 ‘내부 정보 유출’ 건과 관련해 어윤대 전 케이비금융 회장을 경징계했다. 당시에도 중징계에서 한 단계 징계 수위가 낮아졌다. 하지만 제재심의위 의사록은 회의장에서 나온 질의응답 및 견해 등을 발언자가 누구인지도 밝히지 않은 채 간단하게 정리해놓은 데 불과했다. ‘제재
안을 1단계 감경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고 쓰여 있지만, 이런 결과가 왜 나온 것인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의 제재심의 결과를 법원의 판결문에 준하는 수준으로 공개해야 공정성 시비를 덜게 될 것이라고 제안한다.
모호한 제재 기준이 권력층의 간섭 여지를 높이고 금융제재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측면도 있다. 예컨대 금융당국의 제재 사유에는 ‘금융기관의 건전한 운영을 저해한 경우’도 포함돼 있지만 이를 어떤 기준으로 운용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일부 금융학자들(한국금융연구센터)은 감독기구로부터 독립된 ‘금융제재위원회’를 설치하자는 주장까지 편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황보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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