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지주 회장 징계 역사
회장-행장 싸움이 검찰수사로
“추천·선정절차 엄격히” 지적
“추천·선정절차 엄격히” 지적
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 과정에서 촉발된 케이비(KB)금융의 ‘집안싸움’이 급기야 금융당국의 중징계와 검찰 수사로 번지면서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금융당국은 15일 검찰 고발에 나서면서, 임영록 케이비금융지주 회장의 사퇴를 유도하기 위한 전면전에 나설 방침이다. 하지만 임 회장이 물러나더라도, 케이비금융 최고경영자(CEO) 선임 절차를 개혁하지 않는 한, 언제든지 유사한 갈등이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사태를 촉발한 근본 원인이 케이비의 고질적 병폐인 ‘낙하산 인사’에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은 2003년 정부가 지분 9.1%를 모두 매각했지만 시이오 교체 때마다 정부 쪽 입김이 크게 작용해왔다. 2008년 지주회사로 전환한 이후 지주 회장은 모두 외부 인사로 채워졌다. 국내 최대 규모의 금융회사인데다 수십억원대의 고액 연봉이 보장되면서, 이 자리는 정권 실세(혹은 측근)나 ‘모피아’(재무부+마피아)의 몫이라는 관행이 굳어져갔다. 시이오들이 정해진 임기(3년)를 마치지 못하고 물러나온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사실상 퇴진 압박에 시달려왔다. 황영기·강정원·어윤대 등 전 케이비금융지주 회장들은 줄줄이 금융당국의 징계를 받았다.
외부 ‘낙하산’들이 올 때마다 케이비는 내부 줄서기 문화와 세력 다툼으로 내홍을 겪었다. 자신의 조직 내 승진을 외부 낙하산 인사의 결정에 의존하게 되면서, 권력에 줄을 대어 승진을 하려는 왜곡된 조직문화가 양산돼왔다.
모피아 출신(행정고시 20회)인 임 회장이 케이비금융에 입성한 것은 2010년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고려대 동문이자 최측근이었던 어윤대 전 케이비금융 회장이 지주 사장으로 영입한 경우였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7월 회장 자리에 오를 때는 전임 어 회장과 관계가 틀어진 사외이사들의 지지가 발판이 됐다. 비슷한 시기, 금융연구원에 몸담았던 ‘연피아’(연구원+마피아) 출신인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도 행장이 됐다. 형식적으로 임 회장 쪽이 추천하는 절차를 거쳤지만, 실상은 박근혜 정부 쪽 실세의 지지로 행장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줄’(배경)이 다른 지주 회장과 행장 간 ‘어색한 동거’는 이렇게 시작됐고 이때부터 크고 작은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주전산기 교체 과정에서 갈등이 커진 것도 낙하산 시이오들의 주도권 다툼이 정상적인 의사결정을 마비시킬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행장이 금융감독원에 검사를 의뢰한 것 자체가 내부적으로 의견조율이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한 예로, 임 회장에 대한 제재 사유에는 은행의 정보기술(IT) 임원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혐의가 포함됐는데, 임 회장 쪽은 “지주 회장 권한으로 자회사 인사에 대한 협의를 거친 것일 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결과는 참혹한 실정이다. 당장 회장과 행장이 공석이 된 초유의 경영공백 사태를 맞은데다 국내 ‘리딩뱅크’(선도은행)로서의 케이비금융의 위상도 추락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올해 상반기 국민은행의 실적(순이익)은 5462억원에 불과해, 국내 시중은행 가운데 최하위 수준으로 떨어졌다.
반복되는 낙하산 인사에서 벗어나려면 대표이사 선임 과정을 획기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케이비금융의 회장은 사외이사 9명 전원이 참여하는 회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 선정된다. 공모 형식을 선택하지 않고 내부 승계 프로그램과 헤드헌팅 업체 의뢰 등을 통해 후보군을 선정하는데, 추천 기준 및 선정 근거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고 정부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케이비 노동조합은 직원 등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추천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용보증기금 등 일부 공공기관 임원추천위원회에 노조가 추천한 직원 대표가 참여하는 것처럼 추천위 구성의 다양성을 늘리자는 것이다. 노조 관계자는 “이를 통해 회장 선임 과정에서 어느 특정 집단의 이익이 대변되거나 권력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회장 자리가 정권과 친분이 있는 인사들로 충원되는 관행을 깨야 한다”며 “3년 이상 금융회사 경력을 요구하는 등 시이오 선임에 있어 ‘적극적 자격요건’을 신설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5일 논평을 내어 “이사회가 시이오 승계 프로그램을 본격 가동해 사전에 후보군을 발굴·훈련하는 것도 낙하산에 대한 견제 장치가 될 수 있다. 갑작스럽게 시이오가 유고된 이후에나 후보를 물색하는데 이런 과정이 후보의 자격요건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고 낙하산을 불러오는 요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행장 위에 지주 회장이 있는 ‘옥상옥’ 구조를 해소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전체 자산의 90%를 은행이 차지하는 구조에서 회장과 행장의 권력 다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노조 쪽은 “회장과 행장을 겸직하는 대안을 고민해볼 법하다”고 제안했다.
황보연 송경화 기자 whyno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