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법 개정 왜 논란 끊이지 않나
주주 출자보다는 유배당 위주 영업
전문가들 “첫단추부터 잘못 끼워져”
시민단체도 “개정안 서둘러 처리를”
주주 출자보다는 유배당 위주 영업
전문가들 “첫단추부터 잘못 끼워져”
시민단체도 “개정안 서둘러 처리를”
보험회사의 투자손익을 나눌 때 자산의 매각 시점이 아닌 취득 시점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험업법 개정안이 24일 국회에 발의된 것을 계기로(<한겨레> 9월24일치 18면 참조), 보험계약자와 주주 간의 투자손익 배분 기준을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독 우리나라에서 이런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보험업계와 감독당국이 일관되게 보험계약자보다는 회사와 경영진의 이익을 불리는 데만 열중해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참여연대와 금융소비자연맹,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유배당보험계약자 공동대책위원회 등 시민단체들은 25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현행 보험감독법규대로 하면, 보험계약자의 돈으로 산 자산의 매각이익을 주주가 가져가는 부당한 방식으로 배분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며 “이를 시정하기 위한 보험업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시급히 처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법안 발의를 주도한 이종걸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금융감독원에 의뢰해 집계한 유배당 보험 계약 현황을 보면, 삼성·한화·알리안츠·흥국·케이디비(KDB) 등 생명보험사 5곳의 유배당 보험 계약자는 올해 3월 말을 기준으로 449만1124명에 달한다. 삼성생명이 228만5781명으로 가장 많고, 한화(156만8675명), 알리안츠(25만9665명), 흥국(20만8134명), 케이디비(16만8869명) 등의 차례였다. 이런 유배당 보험 계약 규모는 과거에 견주면 크게 줄어든 것이다. 책임준비금 기준으로 생보사 5곳의 유배당 보험 비중을 보면, 1992년 100% 수준이었다가 2000년에 70~80%대로 낮아졌고 지난해에는 20~30%대로 떨어졌다.
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은 “우리나라는 생명보험산업 초기에 보험사들이 무늬만 주식회사로 치장하고, 실제로는 유배당 보험 계약자들의 보험료로 회사를 키워왔다는 데서 근본적인 문제가 시작됐다”고 지적한다. 보험회사는 ‘주식회사’와 ‘상호회사’의 두가지 형태가 있다. 상호회사는 말 그대로 상호부조적 성격이 강하며, 보험계약자들이 모여 회사를 만드는 경우다. 따라서 주식회사 형태의 보험회사는 ‘무배당’ 상품을 주로 판매하고, 상호회사는 ‘유배당’ 상품을 위주로 영업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주식회사인데도 주주들의 출자보다는 계약자들의 돈으로 보험산업이 빠른 속도로 육성돼왔다”며 “미국 등에서는 회사 형태에 따라 판매하는 상품이 일정한 편이고, 우리처럼 유배당에 쏠렸던 상품 판매가 무배당으로 대거 옮겨가지도 않았기 때문에 이익배분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적다”고 말했다. 유배당 보험의 비중이 급락하면서, 현행대로 투자손익 배분 기준을 자산 취득 시점이 아닌 매각 시점으로 하게 되면 보험계약자 대신 주주에게 더 많은 이익이 귀속되는 문제가 불거지게 된 것이다.
심지어 유배당 보험 계약자가 낸 보험료는 재벌 총수가 손쉽게 계열사에 대한 지배권을 획득하도록하는 주춧돌이 돼왔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일가는 삼성생명을 통해 그룹 계열사들을 지배해왔다. 삼성생명의 보유 주식 가운데 그룹 계열사 발행 주식이 전체의 80.5%(지난해 말 기준)에 이른다. 예를 들어,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은 대부분 유배당 상품 판매가 주축이었던 외환위기 이전에 사들인 것이다. 결국 삼성생명의 계열사 주식은 대부분 과거 유배당 계약자의 기여로 취득된 것이지만, 향후 주식을 현행 배분 기준대로 매각하게 되면 주주에게 더 많은 몫이 돌아간다. 더군다나 이런 주식은 그룹 지배에 핵심적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매각 가능성도 현재로는 희박하다.
이번 보험업법 개정안에 대해 삼성생명 관계자는 “2007년에 생보사 상장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현행 기준대로) 일단락이 지어졌던 문제를 다시 들춰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황보연 방준호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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