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경 네덜란드 APG 이사
박유경 네덜란드 APG 이사
세계 3대 연기금 자산운용사 소속
기업 거버넌스 문제 조사차 방한
“한국 대표기업 지배구조 문제
주식시장 매력도 떨어뜨려
정부의 재발방지 조처 궁금
단기부양보단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세계 3대 연기금 자산운용사 소속
기업 거버넌스 문제 조사차 방한
“한국 대표기업 지배구조 문제
주식시장 매력도 떨어뜨려
정부의 재발방지 조처 궁금
단기부양보단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네덜란드계 연금투자회사인 에이피지(APG)의 박유경 기업지배구조 담당 이사는 14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지난달 현대자동차그룹의 한국전력 부지 매입 건과 ‘케이비(KB) 사태’를 지켜본 외국계 기관투자자들은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며 “한국 대표기업들의 지배구조 문제가 한국 주식시장의 매력도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박 이사는 10조5500억원에 이르는 한전 부지의 입찰가 결정과 이에 대한 현대차그룹 쪽의 설명 등에서 합리적 의사결정 과정은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이번 입찰 과정이 총수 일가의 독단적 의사결정으로 이루어진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박 이사는 “한국 주식시장의 ‘다이내믹’이 떨어진 가운데 현대차는 그나마 외국 투자자들 사이에서 ‘바이’(Buy) 의견이 많았는데, 이번 일로 주주 가치가 크게 훼손됐다”며 “상당수 기관투자자들이 이와 관련한 ‘스페셜리포트’를 작성하고 있다”고 전했다.
에이피지는 세계 3대 연기금에 속하는 네덜란드 공적연금(ABP)의 자산운용사다. 아시아와 북미·유럽 등 전세계 시장을 상대로 투자활동을 벌여왔다.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운용하고 있는 연금자산이 500조원에 이른다. 홍콩 사무소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기업을 담당하고 있는 그는 이번 방한 목적에 대해 “지난 몇 달간 한국의 대표기업들에서 불거진 거버넌스(지배구조) 문제가 어떤 요인에 의한 것인지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방한 일정에는 관련 기업 아이아르(IR) 담당자뿐 아니라, 금융당국과 정부 관계자들과의 만남도 포함돼 있다. 첫날인 13일 금융위원회의 정찬우 부위원장, 권대영 금융정책과장 등과 면담을 한 데 이어, 14일 한국거래소를 방문했고 15일에는 상법을 담당하는 법무부 관계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그는 “한국 정부에 최근 불거진 지배구조 이슈들이 일회성인지, 아니면 제도적·조직적으로 일어난 문제인지에 대해 질의했다”며 “현재 기관투자자들이 일련의 상황을 접하면서 동요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정부가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떤 조처를 취할 것인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이사는 이번 방한 결과를 홍콩 등에 사무소를 둔 다른 기관투자자들과 공유할 계획이다.
지난달 외국인 주식투자는 6개월 만에 순매도로 돌아섰다. 최근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자금 이탈 현상이 두드러지는 데 대해, 박 이사는 “거시경제적 요인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지만 대표기업들의 지배구조 문제와도 관련이 깊다”고 지적한다. 기업 지배구조 이슈가 한국 주식시장 전체의 매력도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한전 부지 매입 과정에서 현대차 이사회의 의사결정 구조를 보니) 주주를 대변해야 할 이사회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 것 같더라”며 “케이비의 경우에도 경영진과 사외이사들이 전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차라리 대주주가 들어서는 게 낫겠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고 평했다.
아시아 전체로 볼 때도 기업 지배구조는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박 이사는 “일본에서도 아베 정권이 기업 지배구조 개혁을 추진해 주주와의 의사소통을 확대하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외국인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일본 기업들은 주주에 대한 고려가 많지 않은 폐쇄적 구조였기 때문에 이런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시아의 주요국 시장에서 일본의 배당성향이 제일 낮았었는데 지난해 통계를 보니까 한국이 꼴찌로 내려앉았다”고 말했다.
이달 중으로 금융위원회는 주식시장 활성화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박 이사는 “장기 투자를 하는 입장에서 보면 단기적으로 증시를 부양하는 데 치우치는 것보다는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 기업 지배구조의 건강성을 회복하고 시장에서 신뢰를 줘야 주주들이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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