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선출 투명성 강조해놓고
금융권 인사 외압 의혹 규명 손놔
금융노조 “관치의혹 해소” 촉구
금융권 인사 외압 의혹 규명 손놔
금융노조 “관치의혹 해소” 촉구
우리은행장 선출을 둘러싼 ‘신관치금융’ 논란이 확산되고 있지만 의혹을 규명하고 시정해야 할 금융당국은 무책임하게 방관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금융당국은 최근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선출 과정의 투명성·공정성을 강조하는 방안까지 발표해놓고, 외압에 의한 금융권 인사 의혹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다.
3일 금융산업노조는 성명을 내어 “우리은행 차기 행장 인선과 관련해 사전내정설이 흘러나오고 있다”며 “청와대와 금융당국이 인맥과 연줄로 엉망이 되고 있는 금융권 인사 관련 관치 의혹을 해소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상규 의원(통합진보당)도 “청와대 경제수석과 금융위원장이 이번 의혹의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비판 여론은 오는 9일 우리은행 이사회에서 확정될 차기 행장 최종 후보와 관련해, 이미 이광구 부행장이 내정됐다는 설이 나돌면서 촉발됐다. 이 부행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 ‘서금회’ 멤버로, 정권 실세 쪽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1일 이순우 현 우리은행장이 돌연 연임 도전을 포기하면서 ‘외압’ 의혹이 더 커졌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세월호 참사’ 이후 관료 출신이 금융권의 주요 요직에서 배제되자, 민간 출신이지만 정권에 줄을 댄 인사가 내정되는 ‘신관치금융’ 시대가 열린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관피아’(관료+마피아) 출신이 내려가던 자리를 ‘정피아’(정치권+마피아) 출신이 채우는 일은 최근 몇달 동안 점점 빈번해지고 있다. 최근 선임된 공명재 수출입은행 감사와 이수룡 기업은행 감사, 정수경 우리은행 감사 등이 모두 친박연대나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캠프에 몸담았던 인사들이다.
논란이 확산되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적극적인 진상 규명에 나서는 대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내정설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관여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우리은행장 인사는) 금융당국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을 넘어선 ‘보이지 않는 실세’에 의해 인사가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점을 자인한 셈이다. 부적절한 인사를 감시하고 걸러내야 할 금융당국이 ‘윗선’에서 내려주는 지시를 전달만 하는 ‘메신저’로 전락했다는 비난마저 나온다.
금융당국은 진상 규명은커녕 ‘몸 사리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최근 하영구 전 한국씨티은행장의 은행연합회장 사전내정설이 큰 논란이 됐을 때도 금융당국과 무관한 일이라며 선긋기에만 치중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5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의원들이 은행연합회장 내정설에 대해 추궁하자 “인사 때마다 근거 없는 내정설이 나돌았다”고 일축했다.
더군다나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0일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제시한 바 있다. 모범규준에 따르면,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들은 최고경영자 승계 및 후보군 관리 업무를 상시화해야 한다. 누가, 언제, 어떤 방식과 절차로 시이오를 선임해야 하는지를 마련하고 이를 공시해야 한다. 금융권의 한 임원은 “지금처럼 인맥과 연줄에 의한 낙하산 인사가 계속되고 모범규준이 휴지 조각이 된다면 감독당국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정부가 금융회사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고 공언해놓고, 민영화가 추진중인 은행에 일방통행식 낙하산 인사를 내리꽂는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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