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규제 완화 이후 가파른 증가
은행 여신담당자들과 대책 논의
야당서도 “시한폭탄 키우는 꼴”
금융위선 “걱정할 수준 아니다”
경기부양 흐름 해칠라 침묵 일관
은행 여신담당자들과 대책 논의
야당서도 “시한폭탄 키우는 꼴”
금융위선 “걱정할 수준 아니다”
경기부양 흐름 해칠라 침묵 일관
금융당국이 8월 대출규제 완화 이후 급증한 가계부채와 관련해, 더는 가파른 증가세가 이어지지 않도록 가계대출 억제책을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당국 안팎에서는 가계대출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늘어날 경우 가계의 부채 상환 능력이 크게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8일 금융감독원 핵심 관계자는 “최근 2~3개월 동안 가계대출이 가파르게 늘어나는 데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이것이 일시적 현상인지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인지를 지켜볼 예정”이라며 “계속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별도의 조처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국은행이 내년에도 추가적인 금리인하에 나설 수 있기 때문에 가계대출이 더 가파르게 늘어나지 않도록 방안을 강구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금감원은 은행 여신담당자들과 함께 이와 관련한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으며, 특히 대출규제의 미세조정 등을 통해 대출 증가세를 억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이 이런 우려를 표명하고 나선 것은 두 차례(8월, 10월)에 걸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와 정부의 대출규제 완화 이후 가계대출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완화되기 이전인 6~7월만 해도 은행 가계대출 증가분은 한달에 3조원대 수준이었지만 8월 5조1000억원, 9월 4조3000억원, 10월 6조4000억원으로 가파르게 늘고 있다. 10월 가계대출 증가분은 월간 기준으로 최대 증가폭이었다. 지난달에도 주요 시중은행에서만 4조원 이상의 가계대출이 늘어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대출은 늘었지만 소득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탓에, 가계의 상환능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김기준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한국은행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올해 3분기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36.7%로, 대출규제 완화 이전인 2분기 134.7%에 견줘 2%포인트 늘었다. 이 통계는 가계부채 수준을 보여주는 가계신용과 국민계정의 개인 가처분소득을 비교한 것으로, 가계가 가용 소득으로 빚을 갚을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보여준다.
국제비교에 쓰이는 자금순환표상 개인부채를 기준으로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소규모 개인기업 등 포함)을 봐도, 지난해 말 160.7%에서 올해 9월말에는 164.1%로 높아진 것으로 추정됐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국 평균인 137.8%(2012년말 기준)를 크게 웃돈다. 이날 새정치민주연합 유기홍 수석대변인은 현안 브리핑을 통해 “대출규제 완화는 경기부양 효과도 기대할 수 없고 가계부채라는 우리 경제의 시한폭탄만 더 키우는 꼴”이라며 “무분별한 대출규제 완화를 재고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달 21일 ‘송도·연세 글로벌 리더스 포럼’에 참석해 “어려운 경기를 고려해 금리 인하를 했지만, 가계부채 동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은은 최근 개인신용평가기관의 협조를 받아 가계부채 실태를 정밀하게 분석하는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금융당국 바깥은 물론 같은 금융당국인 금감원 내부에서도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지만, 정작 주무부처이자 금감원의 상위 기관인 금융위원회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대출규제 완화는 지난 7월 ‘최경환 경제팀’ 출범 이후 경기부양을 위한 중점 대책 중 하나로 내놓았던 정책인 탓에 금융위로서는 이를 섣불리 수정하기 어려운 처지에 있다.
금융위는 예상보다 가파른 가계부채 증가세에 내심 당혹스러워하면서도, 현재로선 엘티브이와 디티아이를 각각 70%와 60%로 단일화한 정책 기조를 손대는 일은 없을 것이란 태도다. 금융위 관계자는 “(가계대출이) 아직은 걱정할 수준은 아니며, 정책 기조를 수정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가계대출 증가세가 은행 주택담보대출 증가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강조해왔다.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의 고금리 대출을 금리가 더 낮은 은행 대출로 갈아타면 대출자 부담이 줄어든다는 논리다. 하지만 금융연구원이 최근 1년간 은행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188만명의 차주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다른 대출을 주택담보대출로 바꾼 전환대출 비중은 규제완화 이후 더 줄어든(12%→11%) 반면에 생활자금 마련 등을 위한 추가대출(37%→42%)은 늘었다. 저축은행 등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의 기타 대출(주택담보대출을 제외한 신용대출 등)도 지난 9월 126조원으로 한해 전보다 12.1% 늘었다. 장민 금융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기존 부채구조 개선보다는 생활자금이나 사업자금으로 쓰기 위한 추가대출이 상대적으로 더 늘어난 점이 우려스럽다”며 “특히 60살 이상 고령층이나 자영업자 등 빚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계층의 부채가 많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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