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시행 예정 ‘지배구조 모범규준안’
금융위, 의견수렴 내세워 시행 늦춰
삼성그룹 중심 재계 반대의견 쏟아내
일부 내용 수정 이어질지 관심 쏠려
금융위, 의견수렴 내세워 시행 늦춰
삼성그룹 중심 재계 반대의견 쏟아내
일부 내용 수정 이어질지 관심 쏠려
재벌그룹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도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의해 선임하도록 한 금융당국의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안’이 시행도 되기전에 휘청이고 있다. 삼성그룹을 중심으로 재계와 대기업 계열 금융회사들의 강력한 반발로 인해, 금융당국은 시행시기를 2주간 연기했다.
9일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각 금융업권 협회와 재계단체가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안에 대한 의견을 많이 보내오고 있다”며 “이들의 의견을 검토하기 위해 시행시기를 기존에 발표했던 것보다 늦추기로 했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애초 지난달 20일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안을 발표하면서, 입법예고 기간을 거쳐 이달 10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힌 바 있다. 내년 주주총회 시즌 전인 2월 중으로 각 금융회사들이 지배구조 연차보고서를 공시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금융위는 의견수렴을 충분히 하기 위해 금융위원회 회의가 열리는 오는 24일로 시행시기를 미뤘다.
금융위가 시행 시점을 미루기로 하면서, 단순히 업계의 의견수렴 기간을 늘리는 차원인지, 이미 발표된 모범규준안의 일부 내용을 수정하게 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모범규준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재계 쪽 반발이 거센 탓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당초 내용을 변경할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다만 타당한 의견이 있으면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 쪽은 이번 모범규준 가운데 특히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 설치 의무와 자산 2조원 이상의 적용 기준 등을 문제로 삼고 있다. 앞서 금융위는 전체 금융회사 551곳 가운데 자산 2조원 이상인 은행 및 은행지주사, 보험회사, 카드사, 저축은행, 증권사 등 118곳을 모범규준 적용 대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들 회사가 최고경영자 등 임원을 선출할 때 자격요건과 후보군 관리, 이사회 추천 등을 수행하는 임추위를 운용하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주로 그룹차원의 인사를 통해 임원이 선임돼온 관행에 일정정도 제동이 걸리게 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근 지배구조에 문제가 된 은행과 달리, 대주주가 명확해 실질적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는 보험업 등에 이런 규준을 도입하는 것은 해당 업종의 발전에 장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또 절차적 객관성과 안정성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시이오 승계프로그램의 운영은 변화무쌍한 금융업 전략적 탄력성을 약화시키고 장기적 사업추진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정부에 제출했다. 따라서 이런 규준을 완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적용 대상 기업을 정하는 자산 기준도 2조원보다 높여야한다는 태도다. 금융권에 따르면 이번 반발은 삼성그룹 쪽에서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범규준이 시행되면, 삼성생명과 삼성증권, 삼성카드, 삼성화재 등이 모두 해당 기준을 적용받게 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특정그룹을 중심으로 동일한 재계 쪽 의견이 집중적으로 당국에 접수되고 있어서 당혹스럽다”며 “임추위를 거치더라도 상법상 이사회와 주주총회에서 시이오가 최종 선임되는 절차를 거치게 될텐데 업계가 과도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은행뿐 아니라 2금융권도 대주주 적격성(자격요건) 심사를 받도록 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 관련 정부 입법안이 제출됐을 때도 재벌그룹 금융회사들의 적극적 로비로 내용이 빠진 적이 있다”며 “최소한의 임원선임 절차를 제안한 금융당국의 모범규준 조차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은 그룹 총수 일가의 독단적 경영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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