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자금 대출 지난해 30% 급증
1~11월 14조…2013년보다 3조 늘어
잔액도 34조원…4년새 거의 3배로
지난해 8월 부동산 규제완화 이후
주택구입 대출 비중은 되레 줄어
1~11월 14조…2013년보다 3조 늘어
잔액도 34조원…4년새 거의 3배로
지난해 8월 부동산 규제완화 이후
주택구입 대출 비중은 되레 줄어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30평대 아파트에 사는 양지연(가명·37)씨는 지난해 11월말 전세 재계약을 앞두고 집주인으로부터 2000만원을 더 올려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2008년 1억6500만원에 처음 전세 계약을 맺은 뒤, 양씨는 2년마다 똑같은 전셋값 인상 압박을 받아왔다. 2010년에 1500만원을 올려준 데 이어 2012년에는 월세 전환을 하든지 2000만원을 올려달라는 요구에 ‘울며 겨자 먹기’로 재계약을 한 바 있다. 이번에 다시 2000만원이 올라, 전셋값은 2억2000만원으로 올랐다. 6년새 5500만원(33.5%)이 오른 셈이다.
전셋값이 오를 때마다 양씨는 눈앞이 캄캄했다. 이미 몇 해 전 은행에서 전세자금 대출 3800만원을 받은 뒤 계속 만기 연장을 해오고 있는 터였다. 은행 담당자는 앞으로 2년 뒤에는 만기 연장이 안 될 거라고 했다. 이번에도 양씨는 2000만원을 마련하느라 발을 동동 구르다, 일단 친인척을 통해 일시적으로 자금을 융통했다. 하지만 조만간 은행 등에서 추가로 대출을 받아서 갚아야 할 처지다.
그는 “평범한 봉급쟁이로 아이 둘을 키우는데 전세 계약 때마다 2000만원씩 전셋값을 올려달라고 하니 너무 버겁다”며 “차라리 집을 사야 하나 생각도 많이 해봤지만, 앞으로는 집값이 더 떨어질 것 같아 자칫 ‘하우스푸어’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용기가 나지 않더라”고 말했다. 막상 집을 사려고 해도 1억원 이상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빚만 자꾸 늘리는 것 같아 부담스럽다고 양씨는 털어놨다.
양씨처럼 전세 재계약을 할 때마다 자금 압박을 받는 서민들이 적지 않다. 전셋값 고공행진이 계속되면서 전세자금 대출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1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원석 의원(정의당)이 금융감독원을 통해 받은 ‘은행권 전세자금 대출 현황’을 보면, 지난해 1~11월 전세자금 대출 신규 취급액은 14조6000억원에 달한다. 연간 기준으로 2011년 9조원이었던 전세자금 신규 대출은 2012년 10조2000억, 2013년 11조3000억원에서 2014년에는 1~11월치만으로도 한 해 전보다 29.2%가 늘었다. 월평균 신규 대출액도 2011년에는 7500억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1~11월에는 1조3300억원으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자금 월평균 신규 대출액이 1조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전세자금 대출 잔액도 지난해 11월말 기준으로 34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2010년에는 이런 잔액이 12조8000억원에 불과했다. 대출 건수는 같은 기간에 55만5000건에서 89만5000건으로 늘었다. 이런 전세자금 대출의 증가는 지난해 12월말 기준 전국 아파트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이 70%에 이른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이는 케이비(KB)국민은행이 관련 집계를 시작한 1998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정부는 지난해 8월 시행한 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가 전세수요를 매매수요로 이끌어 전셋값 안정에 기여할 것처럼 밝혔지만, 결국 주택 구입과 무관한 가계대출 증가와 전셋값 폭등으로 귀결됐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감원의 ‘자금용도별 주택담보대출 현황’을 보면, 대출규제 완화 이전인 1~7월 주택담보대출 신규 취급액 가운데 주택구입 목적 대출 비중은 51.9%였는데, 규제 완화 이후인 8~10월에는 46.9%로 줄었다. 반면에 같은 기간 생계자금 용도의 대출 비중은 12.1%에서 13.0%로 늘었다.
박원석 의원은 “정부가 주택시장 정상화와 가계부채 관리, 주거안정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다 놓치고 있는 것 같다”며 “부동산 대출규제 완화로 주택구입 목적보다는 생계자금 마련 등을 위한 대출 비중이 늘어났고, 무주택 서민들도 주거불안 속에 보증금을 마련하느라 빚더미에 올랐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의원은 “전월세 인상률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도입 등 전월세 시장의 근본적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주거안정대책이 조속히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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