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64개 금융사 실태점검 결과
점수제 투자성향평가 방식 ‘부실’
부적합확인서 등 남발 ‘고위험’ 판매
점수제 투자성향평가 방식 ‘부실’
부적합확인서 등 남발 ‘고위험’ 판매
금융상품 거래를 시작하려고 증권사 지점을 찾은 40세 직장인 홍길동씨는 7개 질문으로 구성된 투자성향 평가지를 받았다. 투자경험과 지식, 투자목적, 투자예정기간, 재산상황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대부분 금융상품 판매기관이 채택하고 있는 ‘점수화 방식’ 투자성향 평가였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바탕으로 총점에따라 안정형(20점이하), 안정추구형(20~40점미만), 위험중립형(60~80점미만), 공격투자형(80~100점)으로 투자자의 투자성향이 나뉜다.
40세인 홍씨는 나이 부분에서 12.5점 만점을 받았지만, 금융상품에 대한 지식을 묻는 질문에는 ‘주식과 채권의 차이를 구분할 줄 아는 정도’라고 답해 12.5점 만점에 6.3점을 받았다. 감내할 수 있는 손실 수준에는 ‘기대수익이 높다면 위험이 높아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항목을 골라 18.7점 만점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대답을 이어간 홍씨의 투자성향 점수는 78.1점으로, ‘적극투자형’ 이었다. 홍씨에게 증권사는 파생상품 등 초고위험상품을 제외한 상장주식, 회사채 등 금융상품을 권유할 수 있다.
3일 금융감독원은 일반투자자를 상대로 금융투자상품을 판매하는 은행, 증권, 보험 등 64개 금융회사를 상대로 투자성향 실태점검을 벌인 결과 투자권유절차가 투자자의 성향과 투자권유 실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고 밝혔다. 금융회사는 자본시장법상 적합성 원칙에 따라 투자성향평가를 거친 뒤 투자자 성향에 적합한 금융상품만을 권유해야 한다.
64개 중 62개 회사가 채택하고 있는 점수화 방식은 쉬운 평가방식 덕에 널리 이용됐지만 투자자의 특정성향을 밝혀내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일부 금융회사의 경우 수수료가 높은 고위험상품을 팔기 위해 투자자가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일부 항목의 배점을 근거 없이 높게 잡았다. 원금보존을 원하는 특정성향의 투자자조차 점수만을 토대로 ‘적극투자형’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평가와 무관하게 ‘투자권유불원 확인서’, ‘부적합 확인서’ 등을 통해 고위험 상품을 판매하는 비중도 높았다. 투자권유불원 확인서는 투자자가 투자성향평가에 근거한 증권사의 투자권유를 거부하겠다는 확인서다. 권유에는 동의한 투자자가 자신의 성향보다 고위험상품에 투자하고 싶을 때는 개별적으로 부적합 확인서를 제출한다. 2013년 한해 64개 증권사가 판매한 전체 금융상품 가운데, 투자권유불원 확인서를 바탕으로 판매한 상품은 10.9%(42만6591건)였고, 부적합 확인서를 받고 성향에 맞지 않는 고위험 상품을 판매한 경우는 34.9%(137만655건)였다.
금감원은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단순 합산 점수가 높은 투자자라도 원금보장을 원하면 낮은 등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항목별 과락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평가체계 개선을 금융회사에 요구할 계획이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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