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계좌수 적어 1등부터 좌르르
은행 “격려 위해 상위권 공개한 것”
은행 가입자 수, 전체 90% 넘지만
1인당 금액은 증권사 8분의1 불과
불완전판매 직결…평가틀 바꿔야
은행 “격려 위해 상위권 공개한 것”
은행 가입자 수, 전체 90% 넘지만
1인당 금액은 증권사 8분의1 불과
불완전판매 직결…평가틀 바꿔야
은행권에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유치경쟁의 후폭풍이 불어닥치고 있다. 일부 시중은행들이 계좌 유치 실적에 따라 직원들의 순위를 매겨 공개하면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어서다. 직원들에 대한 ‘줄 세우기식’ 평가 방식이 불완전판매로 직결될 수 있는만큼 평가 잣대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은 최근 아이에스에이 유치 계좌 수에 따라 직원들을 줄 세운 명단을 작성해 사내 게시판에 공개한 것으로 5일 드러났다. 명단에는 1등부터 250여등까지 순위를 매겨 직원 이름은 물론 소속 영업본부 및 지점, 유치 계좌 수 등을 나란히 적었다. 이와 함께 이름과 사번을 넣으면 자신의 등수와 함께 지금까지 유치한 계좌 수가 얼마나 되는지도 볼 수 있게 했다. 1등부터 10등까지는 100만원, 250등까지는 10만원에 해당하는 상품을 주겠다고도 했다.
상황은 다른 시중은행도 다르지 않다. 지역본부 등에서 직원들의 실적을 낱낱이 파악하고, 동료 직원들의 실적을 공공연히 알 수 있게 했다. 한 시중은행 창구에서 일하는 권아무개(32)씨는 “등수를 확인했더니 전체 직원 중에서 최하위권이었다. 이걸 보면 실적 압박을 안 느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마케팅 활동을 촉진하고 실적이 우수한 이들을 포상하려는 취지일 뿐 직원들을 압박하려는 의도는 아니라고 밝혔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격려 차원에서 상위권 일부 명단만 공개하고 실적이 낮은 직원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다른 금융상품을 출시 했을 때에도 이런 전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은행들의 행태는 금융당국이 유도하려는 경쟁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아이에스에이 단순 가입자 수가 아닌 ‘가입자 수에 가입 금액을 곱하는 식’의 평가척도를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유치 ‘건수’가 아닌 ‘금액’도 평가해달라는 것이다. 은행들이 직원 한명당 많게는 100개 이상의 계좌를 할당하고, 성과 압박에 시달리는 은행원들은 자신의 호주머니까지 털어 계좌를 유치하면서 ‘1만원 짜리 깡통 계좌’가 양산되자 나온 주문이었다.
실제로 아이에스에이가 출시된 지난달 14일부터 이번달 1일까지 122만8623명이 가입했는데 이 가운데 은행 가입자 수는 112만2624명으로 전체의 90%가 넘는다. 하지만 1인당 평균 가입 금액은 은행이 36만원, 증권사가 276만원일 정도로 은행권이 적다.
천대중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유치계좌 수 등 단기실적 위주로 평가가 이뤄지는 환경에서는 불완전 판매 가능성이 높다”며 “평가 기준을 잔액 및 수익률 같은 중장기 실적 중심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박승헌 기자 abc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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