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통해 투자자-대출자 연결
개인신용·부동산 대출 투자 모집
누적대출액 8개월 만에 6배 불어나
393억원에서 2266억원으로 급성장
개인신용·부동산 대출 투자 모집
누적대출액 8개월 만에 6배 불어나
393억원에서 2266억원으로 급성장
직장인 배아무개(32)씨는 지난해 6월 말 개인간대출중개업체(P2P대출업체·Peer to Peer Lending)를 통해 36개월 만기로 개인신용대출상품에 100만원을 투자했다. 생소한 방식의 투자였지만 은행 예금 이자율이 연 2%도 안 되는 상황에서, 제시된 연 9%대의 수익률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대출 수요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피투피대출업체 누리집에 대출 수요자의 금융권별 대출정보·연소득·직업 등 기본정보와 신용평가업체와 피투피업체가 자체적으로 평가한 신용등급이 공시돼 있었다. 배씨는 “공시된 자료를 보고 대출자가 돈을 갚지 않을 염려가 적다고 생각했고, 피투피대출이 이제 막 알려지는 단계인 만큼 중개업체도 부도가 나지 않도록 대출자 선정을 더 신중하게 할 것 같아 투자를 결정했다. 온라인으로만 진행되는 투자 과정도 매우 간편했다”고 말했다. 대출 모집액이 1억원이었던 이 상품에는 74명이 투자해, 이틀 만에 모집이 완료됐다. 100만원을 투자한 배씨는 지난해 8월부터 매달 1~2회씩 3만원가량의 원리금(원리금 균등상환)을 꼬박꼬박 돌려받다가, 올해 7월 대출자가 대출금을 전액 중도상환하며 원리금을 모두 회수했다. 세금을 뗀 뒤 돌려받은 원리금은 106만원가량이었다. 꽤 높은 수익률을 올렸지만, 배씨는 당분간 피투피대출에 재투자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그는 “투자를 한 뒤 피투피대출이 법으로 투자자 보호절차가 규정되지 않은 규제 사각지대라는 게 불안하게 느껴졌다. 솔직히 대출자가 중도상환을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 ‘중금리 시장 공략’ P2P대출 급성장
국내 피투피대출 시장이 올해 들어 크게 성장했다. 한국피투피(P2P)금융협회와 케이비(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말 누적대출액이 393억원에 불과하던 이 시장은 올해 6월 말 1526억원, 8월 말 2266억원에 이른다.
피투피대출은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지는 개인 간 대출거래를 말한다. 대부업체처럼 대출 수요자에 대해 자기자본으로 직접 대출하거나 은행처럼 미리 받아 둔 예금으로 대출을 하는 게 아니라, 대출 수요자를 먼저 모집해 대출 모집액과 이자율을 누리집에 공시함으로써 이를 하나의 상품으로 만든 뒤, 다수의 투자자들을 모집해 대출을 실행하는 방식이다. 상품 범위는 개인신용대출뿐만 아니라 건축자금 대출 등 부동산 투자, 소상공인 창업자금 대출 등 다양하다. 모든 과정은 온라인상에서 비대면으로 이뤄진다.
피투피대출을 이용한 대출자는 다달이 원금과 이자를 납부해야 하고, 이에 따라 투자자는 다달이 원리금을 돌려받아 수익을 올린다. 중개업체인 피투피대출업체는 이 과정에서 수수료를 받아 이윤을 창출한다. 국내 피투피업체들은 대개 투자자에게는 수수료를 받지 않고, 대출자에게만 대출총액의 0.5~7%가량 수수료를 받는다.
국내에 피투피대출업체가 처음 생긴 것은 2007년이지만, 최근 성장세를 주도하는 것은 2014년 말부터 우후죽순처럼 설립된 핀테크(FinTech·금융과 기술의 융합을 통한 금융서비스) 기반 피투피업체들이다. 현재는 한국피투피금융협회에 가입된 업체수만 27개다. 이 업체들은 기술 기반의 비대면 자체 신용평가를 핵심 경쟁력으로 내세운다. 대출심사에 기존 신용평가업체의 신용등급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출자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이메일 등 정성적인 자료도 분석해 신용평가에 반영한다. 사소하게는 온라인으로 대출금액을 적어낼 때 망설이는 시간, 대출금액을 고친 흔적 등까지 취합 가능하고, 이 평가를 기반으로 적정 대출금리(투자자 수익률)를 산출해 내는 게 기존 금융권은 물론 다른 피투피업체들에 대항하는 경쟁력의 원천이 된다.
이런 피투피대출의 급성장에는 돈 굴릴 데가 마땅찮은 저금리 환경과 중금리 대출 시장의 부재가 크게 작용했다. 피투피대출 이자율은 평균 연 10% 정도의 중금리다. 현재 상황에서 연 10%의 수익률은 투자자에게 아주 매력적이다. 물론 투자상품이므로 원금보장은 되지 않는다. 또 수익(이자)에 대해 이자소득세(15.4%)가 아니라 비영업대금 이익(금전 대여를 사업목적으로 하지 않는 자가 일시적으로 금전을 대여해 지급받는 이자 소득)에 대한 소득세 27.5%(지방소득세 포함)를 물어야 해서 체감 수익률은 더 낮다. 하지만 전례 없는 세계적 저금리의 압력이 워낙 크다. 자본시장연구원 등의 자료를 참조하면, 전 세계 피투피대출시장은 2009년 1억달러에서 2013년 34억달러, 2014년 90억달러 규모로 커졌고 2015년에는 640억달러 규모로 급성장했다.
피투피대출을 이용하는 대출 수요자가 대부분 은행권에서 대출을 받기 어려운 4~7등급 신용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대출자에게도 연 10% 금리는 매력적이다. 실제 개인신용대출을 취급하는 피투피대출업체 중 누적대출규모가 가장 큰 ‘에잇퍼센트(8PERCENT)’는 4~7등급 대출자가 81.92%에 이른다. 해당 등급의 대출자가 카드사·캐피탈사 등에서 신용대출을 받을 경우 평균 11.63~27.27%의 금리가 적용된다. 대부업체는 7~10등급 신용자가 80% 가까이 된다는 점을 고려해도 평균 신용대출금리가 법정 최고금리 수준(27.9%)이다. 이 때문에 대출 수요자 중에는 기존 제2금융권에서 받은 고금리 대출을 갚기 위한 목적으로 피투피대출에 손을 내미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에잇퍼센트는 8월 말 기준 개인신용대출자 절반가량(47.2%)의 이용 목적이 대출 갈아타기였다.
■ 부동산 P2P 약진…투자위험은?
올해 피투피대출 시장 성장을 이끈 것은 부동산 투자 전문 피투피업체들이다. 건축자금대출 전문 피투피업체인 ‘테라펀딩’은 올해 2월 누적대출액 100억원을 돌파한 뒤 9월9일 기준 누적대출액이 440억원에 이르러 업계 1위로 올라섰다. 이런 업체들은 공동주택·빌라·상업용시설의 건축자금을 해당 건물이나 토지를 담보로 해 모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동산 피투피대출 시장은 투자자·대출자·중개업체 모두의 수요가 맞아 떨어지며 급성장했다. 먼저 투자자는 최소 수억원이 필요한 빌라·상업용 부동산 사업에 100만원 이하 소액으로도 투자를 할 수 있게 됐다. 자산운용사의 부동산펀드가 소액 투자금을 쥔 개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사모투자 위주라는 점을 고려하면, 피투피대출은 가장 손쉬운 부동산 간접투자 수단이 된다. 건축이 끝나면 대출이 상환돼, 투자금 회수도 1년 이내로 빠른 편이다. 투자 수익률도 개인신용대출이 8~9%대로 형성돼 있는 반면, 부동산 자금 대출은 12~18%대로 형성돼 더 높다.
대출자 처지에선 자금을 중금리로 융통할 수 있는데다, 부동산 담보가치의 일정 비율 이상은 대출해주지 않는 담보인정비율(LTV) 규제가 피투피대출업체엔 적용되지 않아 좀 더 큰 금액을 손에 쥘 수 있다. 일반 금융기관과 달리 담보가치의 90% 수준까지 대출 가능한 업체도 있다. 중개업자인 피투피업체도 부동산 대출은 특성상 건당 대출 규모가 크니 안정적인 수수료 수입이 확보돼 반길 만하다.
다만 부동산 전문 피투피대출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다. ‘담보 대출’이라는 형식 때문에 투자자들이 위험도를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 가격은 건물 자체의 가치뿐 아니라 경기, 정책, 주변 상권, 학군, 교통 등 온갖 외부 변수에 영향을 받는 탓에 예측이 쉽지 않다. 게다가 대출 중개업체마다 1순위 채권·2순위 근저당권 식으로 담보의 위험도가 다르고 그에 따라 수익률도 달라져 꼼꼼하게 따져서 투자해야 한다.
■ 규제 사각지대…투자자 보호는 먼 길
피투피대출 시장의 성장세가 이어지지만, 법으로 규정된 투자자 보호책은 없다시피 하다. 현재 피투피대출업체들은 대출 실행을 위해 대부분 대부업 자회사를 두고 있다. 현행 대부업법은 투자자 보호가 아니라 불법 추심 차단 등 대출자 보호 위주로 짜여져 있다. 당장 연체·부도 등으로 투자자와 피투피대출업체 간 분쟁이 생길 경우 투자자는 금융감독원이 아니라 권고 이행 강제력이 없는 한국소비자원을 찾아가야 한다. 만일 중개업체가 망할 경우 대출채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절차도 규정된 게 없다. 사실상 아직까지 큰 대출사고가 없었기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더 근본적으로 피투피대출업체들의 대출심사 신뢰도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하고 있다. 임일섭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금융연구실장은 “새로운 신용평가기술을 가졌다는 피투피업체들이 기존 금융기관보다 신용평가·리스크 관리 전문성이 있는지 입증된 바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일정 기간 동안 목표금액에 미달되면 투자금을 돌려주는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온라인을 통해 투자 모집 대상을 공개해 익명의 다수에게 투자를 받는 방식)과는 달리 현재 대부분의 피투피대출업체는 기간 설정 없이 목표금이 모일 때까지 창구를 열어둔다. 또 대출자는 대출금을 중도상환할 수 있지만 투자자는 원칙적으로 대출 만기 이전에 돈을 회수할 수 없다.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 대출은 대출자 신용평가를 은행이 전적으로 담당하지만, 온라인상에 대출자 정보를 공개하고 자금을 모집하는 피투피대출은 투자자가 신용판단의 주체다. 투자금이 목표만큼 모이지 않는 대출은 투자자들이 대출에 합의하지 않은 것으로 봐야 해, 투자금을 돌려주어야 한다. 비대면거래인만큼 투자자교육의무·공시의무를 부과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호책 미비로 투자자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 보니 업체들이 자체적으로 투자자 보호책을 마련하기도 한다. 에잇퍼센트의 경우 일종의 보험인 ‘안심펀드’를 만들어 투자자들이 3천만원 이하 채권에 투자할 때 일정 수수료를 내면 채권이 부도나더라도 원금의 50%를 보장한다. 이승행 피투피금융협회장은 “중개업체가 부도가 날 경우 협회에서 해당 업체가 보유한 채권을 사들여 투자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할 예정이다. 회원사들이 대출자 정보를 공유하고, 1년에 한 번 회계감사도 받을 예정이다. 심사를 까다롭게 해 대출승인율도 10% 미만”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에서도 오는 10월 피투피대출중개업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발표할 예정이다. 하주식 금융위원회 서민금융과장은 “‘중금리 대안금융’이라는 긍정적 기능을 가지고 있으니, 시장의 창의성과 성장성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투자자들에게 관련 위험을 알리는 방식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가이드라인에서 더 나아가 자본시장법을 통해 피투피대출 투자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자본시장연구원 신경희 연구원은 “피투피대출을 자본시장법에 포함시키면 기존 법을 활용한 투자자 보호가 가능해 피투피대출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효진 기자 ju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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