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9개월 만에 1200선을 돌파해 1203원으로 장을 마감한 23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케이이비(KEB)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한 딜러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주 미국 금리인상 뒤 달러 강세가 가속화하며 원-달러 환율이 9달 만에 1200원선으로 올라섰다. 대외 여건에 의한 원화 절하인 만큼, 내년 초 미국 새 행정부가 출범할 때까진 환율이 높은 수준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23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3.9원(0.33%) 오른(원화 약세) 달러당 1203원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 지난 3월 10일(1203.5원) 이후 9달 만에 최고치다. 환율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 결정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부터 거래일 기준 8일 연속 상승했다. 해당 기간 상승분만 36원이다. 지난 15일(한국 기준) 연준은 기준금리 인상과 함께 내년 금리인상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미 금리인상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달러 강세 요인이다.
달러 강세는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시작됐다. 트럼프의 경제정책이 미국 경제 성장을 도모할 것이라는 기대와 물가 상승을 불러와 연준의 금리인상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에 달러가 한국을 비롯해 내년 성장 전망이 불투명한 다른 나라 통화에 비해 강세를 보였다. 트럼프 당선 전날(11월 8일) 대비 23일까지 원-달러 환율은 6%나 올랐다.
원-달러 환율이 1200원선을 넘기면서 자금 유출에 대한 금융시장의 불안도 고조될 수밖에 없다. 당장 눈에 띄는 유출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외국인 투자자들은 원화 약세 상황에서 환차손을 우려함과 동시에 한국 수출 기업의 이익이 늘어날 가능성에도 주목할 수밖에 없다. 최근 코스피 시장에서는 외국인 순매도가 소폭 나타났지만, 수출주에는 매수세가 들어오고 있다. 최근 환율 상승에도 외국인 자금이 대규모로 이탈하지 않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원화와 동조화 경향을 보이는 위안화 환율이 최근 달러당 7위안 가까이 상승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내년 초 위안화 약세를 기점으로 한 중국 및 신흥국 금융시장 불안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는 상태다.
실물 측면에서 보면 환율 상승은 수출 기업에는 호재다. 다만 수입 물가도 상승시켜, 최근 조류인플루엔자(AI) 등으로 인한 식료품 물가 상승과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소비 심리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나온다.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이 점차 낮아지고 있어 원화가 자체 동력으로 절상될 가능성이 크지 않은 가운데, 달러 강세로 인한 원화 약세는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박형중 대신증권 마켓전략실장은 “내년 초 취임할 트럼프가 어떤 정책들에 주안점을 두느냐에 따라 달러화의 방향이 결정될 것이다. 그 전까지는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며 “취임 뒤 보다 가시적인 정책인 보호무역을 중시한다면 달러화 강세가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어떤 정책을 펴든 장기적으로 달러화는 강세 압력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효진 기자
jul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