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달러화 가치가 3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자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는 등 국제 금융시장이 출렁거렸다. 2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060원 선이 무너지며 3년2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24일(현지시각)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의 “약한 달러가 미국에 좋다”는 발언이 나온 직후 뉴욕 외환시장에서 6개 주요 통화에 견준 달러 가치(달러인덱스)는 1%가량 하락하며 2014년 12월 이후 처음 90 선을 내줬다. 채권 시장에서는 달러 약세 우려로 미국 국채의 팔자 물량이 쏟아지며 장단기 금리가 일제히 올랐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에 참가한 므누신 장관은 이날 “약한 달러는 우리에게 무역과 기회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좋다. 단기적 관점에서 약한 달러가 수출을 돕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약달러가 미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인다는 원론적 차원의 발언일 수 있다. 하지만 <파이낸셜 타임스>는 로버트 루빈(1995~99년 재임) 이후 미국 재무장관들의 공식 입장은 강달러가 미국의 경제력을 상징한다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중국 및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처)를 발동한 직후 나온 발언이라서 수출 확대를 위해 약달러를 용인하겠다는 더욱 분명한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도 “무역전쟁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며, (이제) 다른 점은 미국 군대가 성벽에 도달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자재 가격은 일제히 뛰었다. 브렌트유는 배럴당 70달러를 재돌파했고 금과 구리 가격 모두 올랐다. 달러화로 결제되는 원자재 가격은 달러 움직임과 반대로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다.
달러 가치는 올해 들어서만 3% 넘게 떨어졌다. 미국의 감세정책으로 인한 재정적자 확대 우려 등 내부적 요인도 있지만, 유로 등 주요 통화의 강세가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달러에 견준 유로화 가치는 올해 들어 3.3% 올랐다. <블룸버그>는 유럽의 경기 개선에 따른 통화정책 정상화로 유로화 강세가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25일 유럽중앙은행(ECB) 통화정책회의를 앞두고 마리오 드라기 총재는 시장 달래기에 나섰다. 드라기 총재는 통화정책이 유로화 변동을 부르는 요인이 아니라면서 유로화 강세를 경계하는 태도를 나타냈다.
엔화의 반등도 달러를 압박하고 있다. 일본 중앙은행이 지난 23일 기준금리를 동결하는 등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했지만 엔화는 이후에도 강세를 이어갔다. 엔-달러 환율은 올 초 112엔대에서 현재 108엔대로 내려왔다. 앞서 자산 매입액 축소로 불거졌던 시장의 긴축 의구심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위안화도 달러당 6.3위안대로 강세를 띠고 있다.
달러 약세에도 올해 들어 제자리를 맴돌던 원화 가치는 25일 급등했다.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1.6원 급락한 달러당 1058.6원에 거래를 마쳤다. 2014년 10월30일(1055.5원) 이후 가장 낮았다. 이날 외국인이 코스피 시장에서 3629억원의 주식을 순매수한 것도 원화 강세를 거들었다.
글로벌 자금 흐름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올해 들어 신흥국 증시는 불을 뿜고 있다. 코스피는 이날 외국인과 기관의 ‘쌍끌이’ 매수에 힘입어 24.23(0.95%) 오른 2562.23을 기록해 지난해 11월3일 이후 2개월여 만에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한광덕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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