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규모가 세계에서 네번째로 큰 독일의 국내총생산(GDP)은 3조7500억달러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페이스북, 구글로 구성된 미국 아이티(IT) 핵심 5개사의 시가총액 합계는 3조4000억달러다. 그나마 3월에 주가가 하락해 그 정도이지 많을 때는 3조7500억달러를 넘었다. 지난해 이맘때 영국의 국내총생산액을 넘은 데 이어 1년 만에 독일과 맞먹는 수준이 된 건데 미국 주식시장에서 이들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은 보는 시각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우선 과점이 심화하면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생각할 수 있다. 현재 미국 검색시장에서 구글이 차지하는 비중이 70%를 넘는다. 2020년에는 해당 비중이 80%까지 올라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광고 부문도 사정이 비슷해 미국 온라인 광고시장의 60%를 구글과 페이스북이 차지하고 있다. 온라인의 특성상 새로 공장을 짓거나 시설 투자를 할 필요가 없이 영업 공간을 늘릴 수 있기 때문에 5개사의 지배력이 점점 세지고 있는 것이다.
반대쪽에서는 특정 기업에 의한 쏠림 현상으로 주가 변동성이 커지는 걸 우려하고 있다. 5개사의 시가총액이 2013년 이후 5년간 360% 증가했다. 같은 기간 나스닥 지수 상승률 120%보다 월등히 높다. 어느 순간 이들이 높은 가격을 이기지 못하고 하락할 경우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주식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 시장에서는 반도체와 바이오가 5개사와 같은 역할을 했다. 2016년 이후 코스피 상승의 60%를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 2개사가 담당했고, 2017년 하반기 이후 코스닥 상승의 절반 이상은 바이오 덕분이었다. 둘 중 바이오가 더 중요하다. 반도체는 업종 경기 회복에 따른 순환적 상승이지만 바이오는 새로운 산업이 자리를 잡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대세 상승은 기존 산업이 퇴조하면서 생긴 공백을 새로운 산업이 메우는 과정이었다. 종합주가지수 2000 돌파는 아이티가 퇴조해 생긴 공백을 중국 관련 산업이 메우는 과정이었고, 2500 돌파는 조선, 건설, 철강 등 중후장대 산업이 퇴조한 부분을 새로운 산업인 바이오가 메우는 과정이었다. 이 작업이 어느 정도 완성됐다. 바이오 기업이 시가총액 3위와 6위를 차지할 정도로 커졌기 때문이다. 앞으로 시장은 바이오가 현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2020년에 미국 아이티 5개사의 순이익이 1700억달러(약 180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주가 상승이 단순 기대가 아니라 실력의 뒷받침 아래에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새로운 산업들이 시장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주가에 상응하는 실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종우 아이비케이(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 Weconomy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s://www.hani.co.kr/arti/economy◎ Weconomy 페이스북 바로가기: https://www.facebook.com/econoha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