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의실천연합, 참여연대, 금융정의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장 들머리에서 ‘은산분리 완화’ 시도 중단을 호소하다가 국회 경비들과 물리적 충돌이 빚어졌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은산분리를 완화하는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국회 처리를 위해 ‘재벌은행 금지’와 ‘대주주의 부당한 영향력 차단’ 등에서 후퇴를 거듭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재벌은행 우려’가 가짜뉴스이며 ‘대기업 사금고화 원천봉쇄’가 진짜뉴스라고 선전에 나섰으나 대외적으로 자랑한 성과조차 결국 후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국회 정무위는 법안소위와 전체회의를 열어 재벌은행 금지를 시행령에 맡기고 은산분리 완화 대상을 법 본문에선 제한하지 않는 내용을 뼈대로 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례법안(대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소위엔 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3당 정무위 간사가 합의한 대안이 올라갔으나, 처음 합의와 달리 ‘대주주의 부당한 영향력 행사 금지’ 조항(특례법 10조)을 더 약화하는 방향으로 최종 대안이 마련됐다. 민주당은 재벌은행 금지를 시행령에 위임해 금산분리 강화 당론에서 후퇴한 데 이어 대주주 경영 전횡 차단 장치에서도 한발 물러났다.
현재 은행법은 대주주가 은행의 이익에 반하여 인사·경영·대출 등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5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하지만 처벌을 위해선 ‘대주주 개인의 이익을 취할 목적’이라는 한정 요건이 있어서 법조문이 무력화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특히 인사·경영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에 대해선 ‘경제적 이익 등 반대급부의 제공을 조건으로 다른 주주와 담합하여’라는 한정 요건까지 존재해 처벌이 더 까다로웠다. 다만 은행에 ‘주인’으로 볼 대주주가 사실상 없다 보니 이런 난점들이 가려졌지만, 향후 은산분리 완화 뒤엔 ‘산업자본 주인’이 등장하니 문제가 됐다. 이에 특례법에서 강화 논의가 진행됐던 셈이다.
민주당은 정무위 간사 간 합의 대안을 마련한 뒤 특례법안은 앞서 두 가지 처벌 한정 요건을 삭제했기 때문에 기존 은행법보다 대폭 강화됐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정무위 최종 대안에선 ‘경제적 이익 등 반대급부…’ 요건이 그대로 되살아났다. 민주당은 전날 공식 페이스북에 ‘가짜? VS 진짜!, 팩트브리핑’ 콘텐츠를 올려, ‘목적과 상관없이 (은행) 이익에 반하면 처벌한다’고 선전했다. 하지만 이날 정무위 후퇴로 이는 절반 이상 거짓말이 돼버렸다. 정무위 관계자는 “어떤 대주주가 은행에 부당한 인사청탁과 채용비리, 부당한 대출 입김을 위한 경영 간섭을 ‘경제적 이익 제공과 주주 간 담합’이란 명시적 요건을 충족해가며 하겠나”라며 “조항이 무력화한 것”이라고 짚었다.
이날 정무위 법안소위에선 ‘재벌은행 금지’와 ‘정보통신업(ICT) 주력 기업집단 추가 특혜’ 등 핵심 조항을 정부 소관 시행령에 맡기는 것에 대한 반발도 여전히 제기됐다. 특례법 대안엔 자산 10조원 이상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재벌)을 은산분리 완화 대상에서 원칙적으로 배제하되, 해당 기업집단 내 정보통신업 회사의 자산 비중이 높고 금융과 정보통신기술의 융합 촉진에 기여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해 또다시 예외를 적용해 은산분리 완화를 허용해주라는 내용을 정부 시행령에 넣으란 부대의견이 달렸다. 지상욱 의원(바른미래당)은 법안소위에서 의사봉을 두들기기 직전에 “저는 나가겠다. 법의 형식과 명료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부대 내용으로 특례를 하는 건 국민을 속이는 꼼수이며, 시행령에 위임해서 하는 입법은 나쁜 전례다. 정보통신업(ICT) 내용은 (국회에 제출된) 6개 법안에 들어가 있지도 않았다. 주고받기식으로 밀실에서 야합의 형태로 중요 문제 해결하는 건 옳지 않다”고 말한 뒤 퇴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 의원은 최종 대안을 통과시킨 정무위 전체회의엔 들어가지 않았다. 특례법 최종안은 20일 오전 국회 법사위를 통과할 경우 본회의에 부쳐진다.
정세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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