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의 삼성전자·삼성생명 차명주식 재산 중 일부인 3조5천억원에 대해 현행법상 내년 말까지 70~80%의 증여세와 가산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여당 의원의 주장에 따라 기획재정부가 법제처에 관련 법령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앞서 삼성 차명계좌 과징금 부과와 관련해 법제처가 소관부처인 금융위원회의 기존 유권해석을 뒤집어 과징금 부과가 실행된 전례가 있어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26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학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공개한 기재부 등의 자료를 보면, 기재부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증세법)의 ‘명의개서해태 증여의제’ 규정과 부칙의 적용 범위를 두고 법제처에 지난 12일 법령해석을 의뢰했다. 법령해석 권한은 일차적으로 소관부처에 있지만 해석에 대립이 생긴 경우 법제처에 의뢰해 ‘정부의 최종 유권해석’을 받을 수 있다. 이번 의뢰는 여당 의원이 상증세법 소관부처인 기재부 해석에 이견을 제기하며 협의한 끝에 기재부가 법령해석 요청에 나선 것이어서 무게가 실린다.
관건은 이 회장 차명주식에 ‘명의개서해태 증여의제’ 규정과 부칙이 적용될 수 있는지 여부다. 이 의원의 법령 해석대로 적용이 된다면 내년 말까지 증여세 등의 과세시효가 살아 있고, 기재부 해석대로 적용이 안 된다면 차명주식 대부분은 증여세 과세시효가 지나버린 것이 된다.
상증세법은 일찌감치 ‘명의신탁 증여의제’ 조항을 통해 주식의 실소유자가 명의신탁을 하면 명의개서(주주명부에 등재 등 명의변경)를 한 날 등에 증여를 한 것으로 보고 명의자에게 증여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해놨다. 하지만 차명주식 관행은 여전했고, 정부는 상증세법을 거듭 개정해 차명주식의 실명전환 기회를 부여해왔다. 먼저 1997년 초~1998년 말 2년의 유예기간에 차명주식을 실명으로 돌릴 기회를 주고, 이때 실명전환 하지 않은 차명주식은 조세 회피 목적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이어 2003년부터는 ‘명의개서해태 증여의제’ 규정과 관련 부칙을 새로 도입했다. 2003년 1월1일 이전에 주식 등의 소유권을 취득했으나 ‘명의개서를 하지 아니한’ 사람은 2003년 1월1일에 소유권을 취득한 것으로 볼 테니 2004년 12월31일까지 실소유자 이름으로 명의개서를 하란 취지였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2005년 1월1일에 명의자에게 증여한 것으로 간주해 증여세를 부과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셈이다.
이건희 회장은 1997년과 2003년 상증세법 개정 전후로도 계속 임직원 명의로 막대한 규모의 차명주식을 관리했고, 2008년 특검수사로 4조5천억원에 이르는 차명재산의 실태가 드러났다. 하지만 여러 법적 논란 속에 차명주식에 대한 증여세 과세는 당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증여세율이 50%란 점을 고려하면 아주 작은 금액인 4500억원 정도만 납부됐다.
이에 증여세 과세시효를 좌우할 ‘명의개서해태 증여의제’ 관련 법제처 해석이 주목된다. 기재부는 관련 조항들이 실소유자가 명의변경을 하지 않고 종전 소유자 명의로 남겨둔 사례에 국한해 적용된다고 해석한다. 실소유자가 아니어도 이미 제3자 이름으로 명의개서를 해둔 경우는 ‘명의개서를 하지 아니한 사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에 이 의원은 실소유자가 제3자의 이름으로 명의변경을 해둔 경우도 진짜 명의가 아니니, ‘명의개서를 하지 아니한 사람’으로 봐서 삼성 사례에도 해당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의원의 해석을 따르면, 명의신탁을 해둔 삼성 차명주식은 2005년 1월1일이 증여일로 간주된다. 이럴 경우 부정한 조세 회피 등은 과세시효가 15년이기에, 2019년 말까지 최고 50%의 증여세와 납부세액의 40%에 이르는 무신고 가산세 등을 명의자와 실소유자가 연대해서 물도록 부과할 수 있다.
이학영 의원은 “과거 삼성 수사와 관련 재판 자료 등을 살폈을 때 과세 대상이 될 이 회장의 차명주식 규모를 3조5천억원 상당으로 추산한다”며 “지금에라도 명의개서해태 증여의제 조항을 적용해 정당한 과세를 할 수 있도록 법제처가 신속한 법령해석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금융위는 삼성 차명계좌와 관련해 과징금 부과 대상이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20년간 고수하다가, 지난 2월 법제처가 정반대 유권해석을 내놓자 뒤늦게 30여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이 의원은 27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증여세 문제에 대한 공개질의에 나설 예정이다.
정세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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