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자금시장 불안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석달 동안 금융회사에 유동성을 무제한으로 공급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시장을 진정시키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근본적인 해법에는 못 미치는 것으로 평가했다.
한은은 26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4월부터 6월까지 매주 금융기관이 요청한 금액 전액을 사들이는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아르피란 금융기관이 일정 기간 뒤에 다시 사는 조건으로 파는 단기 채권으로, 한은이 아르피를 사들이면 시장에 돈이 풀리는 효과가 있다. 모두 3조5천억원이었던 아르피 매입한도 제한을 없애고 입찰금리는 기준금리(연 0.75%)에 0.1%포인트를 가산한 0.85%를 상한선으로 한다. 기존 입찰 참여 금융기관 22곳에 증권사 11곳을 추가하고 대상 증권도 국채·금융채 외에 일반 은행채와 공기업 발행 채권 8종을 포함시켰다.
한은은 2008년 11월 금융위기 당시에도 신용경색 완화를 위해 매입 대상 증권을 은행채와 공사채 등으로 확대해 1년간 한시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한 바 있다. 한은은 “한도 제약 없는 유동성 지원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윤면식 한은 부총재는 이번 조처를 “시장 수요에 맞춰 전액 공급한다는 점에서 사실상의 양적완화라고 봐도 틀린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양적완화(QE)는 중앙은행이 경기부양을 위해 국채 등을 매입해 시중에 돈을 푸는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양적완화를 도입했던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지난 23일 자산 매입 한도를 없앤 ‘무제한 양적완화’ 정책을 펴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양적완화의 원조는 일본으로, 2001년 장기국채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실시했고 이후에는 상장지수펀드(ETF) 등으로 대상을 넓혔다. 유럽중앙은행(ECB)도 2015년 회사채 등 민간채권까지 사들여 돈을 풀었다. 이들 중앙은행은 사들인 자산을 장기간 보유하지만, 한은이 매입하는 아르피는 만기가 최대 3개월에 불과해 자금상환 압박을 받게 된다. 한은은 7월 이후에도 시장 상황과 입찰 결과 등을 고려해 연장 여부를 결정한다고 했다. 또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의 양적완화는 대개 통화가치 하락(환율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한은이 공격적인 돈풀기에 나선 데는 지난 19일 미국과 통화 스와프(맞교환) 체결 발표 등으로 1차적인 안전판을 확보했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은이 유동성 공급 확대를 서두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지난 24일 2조5천억원 규모의 아르피를 추가 매입했는데도 단기자금 시장 상황이 더 나빠졌기 때문이다. 이날 채권시장 반응은 ‘양극화’로 나타났다. 국고채는 1년물 금리가 다시 0%대로 내려가는 등 일제히 큰 폭 하락(국채값 상승)했지만, 회사채 금리는 오름세를 이어갔다. 특히 위기의 진원지인 3개월짜리 기업어음(CP) 금리는 2015년 3월11일 이후 5년여 만에 2%를 돌파했다. 최석원 에스케이(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유동성이 취약한 증권사들의 보유 자산이 대출 담보증권에 포함되지 않아 회사채 시장의 불안은 지속될 것”이라고 짚었다.
한광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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