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1500선 아래로 내려가고 원-달러 환율이 장중에 1285원까지 오르는 등 금융시장이 요동친 지난 3월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딜링룸에 코스피와 원-달러 환율 등이 표시돼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한 증권사가 외환시장에서 1조원어치의 달러 매수 주문을 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냐?”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 3월 중순 금융당국 관계자의 전화기에 외환당국 관계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달러 환율은 3월 초 1190원대에서 세계보건기구(WTO)의 팬데믹 선언(3월11일) 다음날인 12일 1200원대를 돌파하더니 무섭게 치솟고 있었다. 증권사의 해외자산 운용이 외환시장까지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순간이었다. 3월18일 1280원까지 갔던 환율은 다행히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소식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외환당국과 금융당국이 증권사에 대한 외환규제를 정비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구체적인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2일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지만 증권사들에 대해 외화유동성 스트레스테스트를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하반기에 금융당국과 협의해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도 “현재 증권사에 대해서도 외화유동성 비율 규제가 적용되고 있지만 점검지표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당국이 증권사의 외환규제 정비에 나선 것은 증권사들의 해외 자산운용 규모가 커지면서 금융시장은 물론 외환시장까지 뒤흔드는 등 시스템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은 최근 몇년간 해외 주요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주가연계증권(ELS)를 대거 발행했는데, 지난 3월 세계 증시의 동시 폭락 사태로 마진콜(추가 증거금 납부 요구)에 몰렸다. 특히 대형 증권사 5~6곳은 자체 헤지(가격변동 위험을 선물거래로 상쇄하는 위험회피 기법) 규모가 커 수조원의 증거금을 추가 납부해야 했다. 증권사들은 과거에는 외국 증권사에 파생상품의 신용위험을 떠넘기는 이른바 ‘백투백’ 방식을 취하면서 판매 수수료만 챙기는 식으로 영업을 했으나, 현재는 신용위험을 자체 헤지하는 비중이 크게 늘었다. 자체 헤지 비중이 주가연계증권 발행액(지난해말 기준 48조원)의 58%나 차지한다. 외화 유동성이 부족한 증권사들이 국내 단기자금시장에서 원화 자금을 차입한 뒤 이 자금으로 달러 확보전에 나서는 바람에 원-달러 환율이 폭등한 것이다.
현재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외화유동성 스트레스테스트는 다양한 위기 상황 시나리오를 가정한 뒤 위기를 견딜 수 있을 만큼 외화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는지를 시험해 보는 것이다. 예컨대, 지난 3월처럼 전세계 주가가 동시 폭락할 때 증권사들이 필요로 하는 달러 규모를 추정하고, 이에 해당하는 달러 유동성을 확보하거나 포트폴리오를 미리 조정하는 식으로 대비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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