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 출신 공무원들이 은행연합회와 손해보험협회 등 주요 금융 유관 협회의 임원진에 속속 낙하산으로 내려가 금융위와 금융업계간 유착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금융위원회 출신 공무원들이 업계 로비단체 성격이 강한 주요 금융 유관 협회의 임원진 자리를 대거 차지해 금융권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 연말 주요 협회의 회장 자리를 금융위 고위직 출신들이 차지한 데 이어, 새해 들어서는 금융위 과장급이 일부 협회의 2인자인 전무로 거론되고 있어 ‘금융위가 로비단체를 사실상 접수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11일 금융권의 말을 종합하면, 금융위 김대현 감사담당관(과장급)이 손해보험협회 전무로 거론되고 있다. 김 담당관은 이미 금융위에 사표를 낸 상태다. 김 담당관이 손보협회 전무가 되면 손보협회는 회장과 전무 모두 금융위 출신이 맡게 된다. 회장에는 지난해 말 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선임된 바 있다. 정 회장은 금융위 금융서비스국장과 상임위원(1급)을 거쳤다.
은행연합회는 이미 지난해 12월 김광수 전 농협금융지주 회장이 회장으로 선임되면서 금융위 출신들이 협회의 1·2인자 자리를 차지했다. 앞서 은행연합회 전무에는 이호형 아이비케이(IBK)신용정보 대표가 임명됐다. 김 회장은 금융위 금융서비스국장과 금융정보분석원장(1급)을 거친 금융 관료 출신이고, 이 전무도 금융위에서 공정시장과장과 금융소비자보호기획단장을 지냈다.
여신금융협회와 생명보험협회는 각각 회장과 전무가 금융위 출신이다. 여신금융협회 김주현 회장은 금융위 금융정책국장과 사무처장(1급)을, 생보협회 김제동 전무는 금융위 금융공공데이터담당관(과장급)을 지냈다.
익명을 요청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위 출신 공무원들이 협회의 1·2인자 자리를 독식하는 것은 이례적인 상황”이라며 “금융위가 심하다고 할 정도로 자리를 싹쓸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의 이런 행태는 특히 지난해 말부터 두드러지고 있다. 금융 유관 협회의 임원 인사는 형식상으로는 협회 임원추천위원회를 거치나 실제로는 금융위 고위층의 입김이 많이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일각에선 청와대가 민간단체에 대한 인사 개입을 사실상 하지 않자 금융위가 노골적으로 제식구 챙기기에 나선 것으로 해석한다. 현 정부 초반기에는 금융위가 청와대 눈치를 보는 듯했으나 지난해 말부터는 그마저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과거에는 (청와대에서) 이런 부분에 대해 통제를 했는데 지금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며 “이렇게 틈새가 생기다보니 금융위 공무원들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행태는 금융위 공무원 입장에서는 ‘자리’를 챙겨서 좋고, 협회 쪽에서는 정부 쪽과 ‘연줄’이 생겨 이득인,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일 수 있다. 문제는 그 피해가 금융소비자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금융산업 육성과 금융감독 정책 수립이라는 두가지 큰 목표를 추구하는 조직인데, 금융 유관 협회들과 유착이 되면 금융감독보다는 금융산업 육성에 주안점을 둘 개연성이 높아진다. 예컨대, 사모펀드 정책을 수립할 때 관련 산업의 육성을 강조하다보면 감독이 느슨해져 소비자의 피해로 귀결되는 식이다.
금융 유관 협회 기관장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관피아’(관료+마피아의 합성어)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비등하면서 한때 민간 출신 인사들로 채워졌다. 그러나 이들의 임기가 만료된 뒤 빈 자리를 관피아가 다시 차지하고 있다. 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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