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T코리아 CSR담당 노종혁 전무는 생산활동에서의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헤리리뷰] HERI가 만난 사람 / BAT코리아 노종혁 전무
각계 비판 의견 수렴…대화 내용 공개하고 경영에 반영
“다시 한번 흡연은 건강에 심각한 위험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흡연의 위험성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은 담배를 끊는 것입니다.”
금연단체 홍보물의 일부가 아니다. ‘던힐’ 판매·제조사인 브리티시 아메리칸 토바코 코리아(BAT코리아)가 발간한 지속가능 경영 보고서의 일부다.
담배회사가 경영 전략을 수립할 때 의견을 참고해야 하는 사람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담배를 즐겨 피우는 애연가 집단은 당연히 포함될 것이다. 회사와 운명을 함께하게 되어 있는 임직원도 물론 들어갈 것이다. 담배는 규제 산업이니, 정부나 국회와도 대화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조금 더 넓혀서, 의사들과 대화할 필요도 있을까? 조금 껄끄럽긴 해도, 건강에 덜 해로운 담배를 만들려면 그럴 수도 있으리라. 그러면 담배의 해악을 연구하는 보건 관련 연구소의 연구자는? 금연운동을 벌이는 단체는?
BAT코리아는 ‘갈 데까지’ 갔다. 소비자·임직원 등은 물론, 금연운동단체를 포함한 보건의료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경영 의사 결정에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각계각층과 진행한 ‘사회와의 대화’ 결과, 사회가 이 담배회사에 기대하는 것으로 밝혀진 이슈는 최근 발간한 지속가능 경영 보고서인 ‘사회보고서 2007-2008’에 적나라하게 적시돼 있다. 여기에 대한 회사 쪽의 공식적 답도 함께 담겨 있다.
“이해관계자와의 대화는 단순히 보고서를 쓰기 위한 과정이 아닙니다. BAT의 경영 철학의 일부입니다.” 이 회사 노종혁(44) 전무는 보고서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내용이 이해관계자와의 ‘약속’이며 반드시 경영 의사 결정 과정에 반영된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BAT코리아에서는 BAT의 다른 모든 지역 법인과 마찬가지로, 사장이 위원장을 맡고 각 부서장이 참여하는 사회책임운영위원회가 운영되고 있다. 분기별로 열리는 회의에서는 그때그때 이해관계자들과 나눈 대화 결과가 보고된다. 각 부서장이 참여하고 있으므로, 바로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고 실행 계획이 나온다.
BAT그룹은 아닌 게 아니라 사회책임 경영을 핵심적 경영 원칙으로 삼고 있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두고 세계 180여개국에서 영업 활동을 하고 있는 이 회사는 전세계에 동일하게 3대 경영 원칙을 적용한다. 책임 있는 제품 관리, 상호 이익, 좋은 기업 경영의 원칙이 그것이다.
‘책임 있는 제품’은 흡연이 건강에 끼칠 수 있는 위험을 인정하고, 그 선상에서 경영 전략을 펼쳐가는 것이다. 예를 들면, 24쪽 분량의 이 회사 마케팅 원칙에는 ‘청소년을 상대로 마케팅을 할 수 없다’거나, ‘담배와 사회적 성공 또는 성적 매력을 연결시키는 광고는 금지한다’, ‘유명 인사 출연 광고는 금한다’는 등의 내용이 빼곡히 차 있다. 법을 지키는 것은 기본이고, 법보다 더욱 엄격한 마케팅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상호 이익’이란 주주, 직원, 지역사회, 공급자 등을 주요 이해관계자로 정의하면서 이들 모두에게 이익이 되도록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하는 원칙이다. ‘좋은 기업 경영’은 정직성, 인권, 사회적 책임, 환경 등의 내용이 담겨 있는 원칙이다.
요약하면 지속가능 경영에서 이야기하는 경제, 환경, 사회적 가치와 이해관계자 중심 경영을 모두 담고 있는 경영 원칙이다. 지속가능 경영의 교과서라고 봐도 될 정도다.
“사회로 되돌리는 사회공헌 활동도 중요하지만, 기본적 생산활동에서의 사회적 책임이 더욱 중요하다는 게 우리 회사 철학입니다.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보다 ‘어떻게 버느냐’의 문제에 더욱 천착하겠다는 이야기지요.” 노 전무가 덧붙였다.
경영 관점에서 보면 이런 활동은 결국 비용이다. 이해관계자로부터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도 비용이지만, 그 의견을 경영 방침에 반영하면 그 결과로 발생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런 비용을 이 회사 스스로 어떻게 합리화하고 있을까?
“사회책임 경영 활동이 직원에게 끼치는 영향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제품을 직접 생산하고 판매하고 관리하는 임직원이, 가족에게 자기 회사를 자랑스럽게 설명할 수 있을 때 회사 경쟁력은 훨씬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인재가 회사를 선택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요.” 인재 관리가 결국 기업의 경쟁력이 되는 시대이고, 사회책임 경영은 그 인재를 데려오고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게 노 전무의 설명이다.
BAT 본사는 담배업계에서는 유일하게 다우존스 지속가능성지수(DJSI)에 편입되어 있기도 하다. 따라서 여러 사회책임 투자 관련 펀드의 투자 대상 종목이 된다. 이에 따라 주가가 오르기도 했을 테니, 사회책임 경영이 주주에게도 이익이 되는 경영 행위인 셈이다.
사실 최근에는 많은 한국 대기업도 기업 경영 방침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시민단체를 포함해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대화하려고 노력한다. 문제는 대화의 상당 부분이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지고, 그 내용을 해당 부서나 임원들끼리만 공유한다는 것이다. BAT는 그 대화를 용감하게 대중에게 공개한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회사의 조처를 약속한다. 회사 경영진 스스로를 강제하는 장치를 만든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합리적 토론과 합의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풍토에서, 사회와 대화하기는 애초에 모험이었다. 이해관계자들이 비판적 목소리를 너무 높여 당황스럽기도 했고, 직원 일부는 사회까지 챙겨야 하느냐며 불만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일단 용기 내어 시작한 뒤, 시간이 지나면서 대화는 자리를 잡고 있다.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고 했다. ‘아름다운 경영’도 용기가 없으면 얻기 어렵다.
글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timelast@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BAT코리아 CSR담당 노종혁 전무는 생산활동에서의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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