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더 이상 자산 증식 수단이 되지 않거나 못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지만 자가보유율은 50% 수준에 그치고 있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임대시장과 서민의 주거 안정성 차원에서 영향력이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가가 공급하는 공공임대 비율이 5% 수준에 불과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2%에 많이 못 미치고 있다. 나머지는 민간영역으로 정부 통제력을 벗어난 전월세 시장이다.
‘소유보다 사용’ 문제에 더 집중하게 되는 공유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시점에 ‘집’이라는 삶의 기본적인 토대에도 새로운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세계 각국의 부동산 침체로 소유 영역의 수요가 줄어든 상황에서, 사용 영역에서의 발빠른 사업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우리 정부도 이러한 움직임에 발맞춰 기업형 임대사업 육성을 통한 중산층 주거 대책인 ‘뉴 스테이(New Stay) 정책’을 발표하고 기업의 임대시장 진출을 독려하고 있다. 시장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은 반길 일이다. 그러나 기업형 임대는 서민들이 감당하기 힘든, 장기적으로 분양을 염두에 둔 중산층용 사업이다. 서민용 공공임대의 절대량이 여전히 부족한 현실에서 정부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서 지원해야 할 일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기업형 임대주택은 그 우려와는 별개로 주택의 유형과 공급방식이 다양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국가와 개인 다주택자(임대사업자)가 주로 공급해왔던 주택시장에 새로운 주체와 방식의 등장을 통해 우리 사회에 부족했던 촘촘한 ‘주거 사다리’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주거의 질과 ‘지불 가능성’이 중시되기 시작하면서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공동체성, 상호협동, 공유 등의 가치를 추구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국가 주도로 공급되는 공공임대, 민간 주도의 시장임대와 기업형 임대주택 이외에 사회주택, 공동체주택 등이 등장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11일 ‘민관공동출자형 사회주택 사업자 모집 공고’를 냈다. 서울시에 이어 국토교통부와 경기도 등 중앙부처와 광역 지방자치단체들도 유사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네덜란드선 사회주택이 전체 30%
이미 서유럽에서는 사회주택이 활성화되어 전체 주택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가 많다. 네덜란드는 사회주택이 전체 주택 시장의 30%를 웃돌며, 오스트리아·덴마크·영국 등도 사회주택이 20% 안팎에 이른다. 공동체주택의 하나로 볼 수 있는 협동조합주택이 전체 주택의 20%를 넘는 스웨덴도 있다.
사회주택은 나라마다 다양하게 정의되지만 대체로 ‘저소득층, 주거 약자를 위해 국가와 비영리 조직이 협력해 공급하는 지불가능한 (임대)주택’으로 규정할 수 있다. 사회적기업·협동조합 등이 정부로부터 택지·자금 등을 지원받아 집을 짓거나 사들여 주거취약계층 등에 공급하는 구조다. 일반 민간임대와 공공임대의 중간 영역이라 볼 수 있다. 공공은 사회주택 공급을 위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함으로써 주택의 공공성을 보장하고, 민간 비영리 영역은 주택 공급·운영에 참여해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구실을 한다. 서울시는 시민 주도의 공동체주택을 지원하기 위한 종합정책을 다음달 중 발표할 예정이다.
낮은 인지도·부정적 인식 극복해야
이런 정책적 변화는 그동안 시민들 스스로 현장에서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펼친 다양한 혁신적 시도와 노력의 결실이기도 하다. 마을 중심의 공동체주택인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 만들기), 1인 가구를 위한 셰어하우스를 공급하는 ‘우주’와 ‘서울소셜스탠다드’, 협동조합 방식으로 집을 제공하는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빈집을 리모델링해 임대하는 ‘두꺼비하우징’, 어르신과 예술인을 위한 공간을 공급하는 ‘아이부키’, 지분공유형 협동조합주택을 지향하는 ‘함께주택협동조합’ 등의 다양하고 혁신적인 실험이 이들 정책의 밑받침이 된 것이다.
현장의 노력과 정책적 지원이 보조를 맞추더라도 보편적 모델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공급 주체의 역량이 부족하고 사회적 인지도가 낮고 사회주택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상황은 남겨진 숙제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최근 사회주택 공급 주체들이 함께 힘을 모으기로 했다. 두꺼비하우징·민달팽이 등 대안적 주거 모델을 추구해온 20여개 업체는 지난달 28일 ‘사회주택협회 발기인대회 및 창립총회’를 열고, 주거 문제로 고통받는 서민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로 뜻을 모았다. 협회는 회원사들의 연대와 민관 협력을 통해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지불가능한 사회주택 공급자의 역할을 하는 한편, 이를 위해 사회주택과 관련한 제도 개선과 정책 제안, 기금 조성 등의 인프라 구축에 나설 계획이다.(사회주택협회 사무국:
unochun@gmail.com)
20여개 업체들, 사회주택협회 창립
뒤늦게나마 사회주택이 국내 주거정책의 한 유형으로 등장하고, 관련 민간 주체들이 힘을 모으기로 한 것은 우리 주거사에서 의미있는 사건이다. 초대 이사장인 녹색친구들 김종식 대표는 “서민들의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열심히 하겠지만, 파괴된 인간성과 해체된 공동체를 살려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전은호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전략본부 연구원
unochun@gmail.com